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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孫石熙, Sohn Suk-hee) 인물백과사전

쿠카곰돌이 2020. 3. 2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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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손석희 (孫石熙, Sohn Suk-hee)
출생 1956년 7월 27일 서울특별시 중구
본관 밀양 손씨
신체 177cm
학력
서라벌중학교 (졸업)
휘문고등학교 (졸업)
국민대학교 (국문학 / 학사)
미네소타 대학교 (저널리즘 / 석사)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육군군수사령부)
종교 가톨릭 (세례명: 마르첼리노)
가족 배우자 신현숙, 슬하 2남
직업 언론인
데뷔 1984년 MBC 아나운서
소속 JTBC 대표이사 사장

대한민국의 언론인. 현 JTBC 대표이사 사장.

前 MBC 아나운서국 국장 및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2013년 5월 13일 JTBC에 입사한 후 JTBC 뉴스룸 메인 앵커 겸 JTBC의 보도, 시사, 교양 담당 사장을 역임했으며, 2018년 11월 20일부로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1956년, 서울토박이 집안의 2남 1녀 중 둘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위로는 누나가 하나 있으며, 밑으로는 남동생이 하나 있다.

그의 아버지는 직업군인으로, 6.25 전쟁 참전으로 인해 무공훈장을 2개나 받은 경력이 있다. 손석희가 6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전역하여 여러 사업을 했으나 여러차례 실패를 거듭했고, 때문에 손석희 가족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손석희는 취직하기 전까지 30차례나 이사를 다녔고, 집이 없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손석희 아버지가 양수기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집안에 있던 돈을 다 털고 사들여 놓은 걸 경기도 연천군 전곡 어딘가에 풀어놓았다가 큰물이 져 몽땅 떠내려가 버렸다. 손석희는 "이후 우리 식구들의 사건은 그 사건처럼 극적인 데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중구 필동의 양철담장집에 세를 들어 살았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상당히 고집이 세고 터프했다고 한다. 국민학교 2학년의 성적표에 '이 학생은 고집이 똥고집' 이라고 적혔다고 한다. 어릴 때는 근처 퇴계로 고아원 아이들과 자주 어울려 놀았는데 딱히 비슷하게 어려운 처지여서가 아닌 누구 하나 특별히 잘 살거나 못 사는 거 없는 처지였다고 한다. 그러다 3학년 때 부임한 담임교사가 도시락 반찬을 싸오지 않고 아이들의 반찬을 빼앗아 먹더니, 한술 더 떠서 아이들의 도시락을 둘러보고 "같이 먹자"며 아이들을 불러냈다. 곧 학급은 선생님 책상에 늘 불려가는 아이들, 가끔 불려 나가는 아이들, 전혀 불려 나가지 못하는 아이들로 나뉘었고, 당연히 손석희는 마지막이었다.
본인은 그때 비로소 가난을 알았다고 한다. 반면교사의 적절하고도 훌륭한, 한편으로는 굉장히 씁쓸한 사례

국민학생 시절 심한 도벽이 있었다고 한다. 거의 모든 것이 도벽의 대상이었고, 무엇이든 훔치지 않고는 못 배겼다고 한다. 어머니의 지갑에서 시작해서 이웃집의 물건들을 훔쳤다고 한다. 어머니에게 수 차례 회초리를 맞아도 소용없었고, 어머니가 울면서 타일러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급기야는 아버지에게 피멍이 들도록 매질을 당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은 손석희의 자전격 수필집 <풀종다리의 노래>에 나와 있다.

국민학교 고학년 때 성북구로 이사를 갔고, 조용했던 아이들 분위기에 맞춰서 덩달아 조용한 성격이 되었다고 한다. 6학년 때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를 보다가 갑자기 천장에서 작은 흙덩이가 떨어졌다. 대충 지은 집에서 빗물 새는 건 흔한 일이어서 식구 모두 신경 쓰지 않다가, 떨어지는 흙이 점점 많아지자 살림을 마루로 옮기고 옷을 챙겨 급히 집을 나오니 곧 천장이 무너졌다고 한다.

국민학교 졸업 후에 서라벌중학교에 입학했다. 손석희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그해(1969년)부터 중학교 입시가 폐지되어 중학교 평준화 1세대가 되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학교에서 전교생이 시험을 쳐서 우열반을 나눴는데, 우반 C반에도 떨어져 열반에 속하게 되어 저녁 보충수업을 받지 않고 노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대충 포기하는 학생이 된 셈이었다"고 손석희 본인 스스로 말한 바 있다. 특히 물상을 못했는데, 관성의 법칙이 도저히 이해가 안갔다고 한다. 물포자

중학교 때는 한때 아버지의 사업이 잘 돼서 제법 부유하게 살았다고 한다. 아파트가 드물던 당시 서울에서 제법 좋은 아파트에 살았는데, 당시 그 아파트에는 유명 배우들도 여럿 살았다고 한다. 특히 당시 MBC의 인기 여배우였던 김영애도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종종 마주쳤다고 한다. 또 고교 시절에는 같은 동네에 살던 여배우 고(故) 여운계와 탁구 복식조로 활동했었다고 한다. 중학생 시절 걷는 것을 좋아해 6~7정거장 거리를 꼬박꼬박 걸어다녔다고 한다.

명문 공립 고등학교 입시에 낙방하고 후기 지망으로 당시 종로구 계동에 있던 휘문고에 들어갔다. 입학식 직후 선배들의 눈에 띄어서 방송반원이 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방송실에 들어갔는데, 방송실 뒤쪽에서 쭈그려 앉아 있던 학생이 송승환이었다고 한다. 
열악한 시설이었지만 이 때 경험은 아나운서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고등학교 시절 식구들한테 "넌 조울증 기가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휘문고 1학년 때 아버지가 부도를 내 중학교 때 여유로워졌던 집은 다시 어려워졌고, 산비탈에 있는 방 2칸에 부엌 딸린 집에서 살게 되었다. 학교까지 걸어다니며 차비를 모아 고등학교 2학년 때 전축과 레코드 2장을 샀고 결혼하고 새 전축을 살 때까지 15년을 내리 그 전축과 보냈다고 한다.

수험생 시절 특히 수학을 못했는지, 2015년 3월 16일 JTBC 뉴스룸 2부 팩트 체크 시간에, 자인이 사실 수포자였다고 말했다.

재수를 해서 1976년 국민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국민대에 합격만 해 놓고 다음해와 다다음해 사수까지 하며 2번 더 입시를 봤으나 모두 실패하여 그냥 국민대를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손석희는 자신의 20대 시절을 허무주의에 빠져 있던 시기로 규정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이 주 이유였다고 밝혔다.  손석희는 자신이 20대 시절 빠졌던 허무주의에 대해 나이답지 않았다고 스스로 자평했다. 손석희는 노조 활동을 하게 된 이유를 자신을 지배하고 있던 허무주의를 끝장내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1979년 군대에 입대했다. 군대에서 '좀 편해보겠다고' 타자까지 배워 입대했다고 한다. 입대 후 훈련소에서 본인이 원하던 대로 타자 주특기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타자 주특기 후반기교육을 받던 시절, 여군 피우진과 약간의 인연이 있다. 손석희가 타자 주특기 교육을 받던 훈련소는 여군 부사관후보생들을 훈련하는 곳이었는데, 이 훈련부대 중대장 중 한 명이 피우진이었다고 한다. 피우진 본인도 군 시절 이야기를 쓴 저서인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에서, 훈련병 시절의 손석희에 대해 짧게 회고하였다.

후반기교육 후 부산에 있던 육군군수사령부 본부근무대 행정병으로 자대배치되었다.

군 복무 중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2015년 3월 12일 서강대학교 개강미사 특강에서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군 복무 시절 성당에 가면 좀 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가보니 미사 시간에 가슴도 치고, 무릎도 꿇고, 계속 서 있고 해서 잘 수가 없었다고 한다.

국민대학교 시절에는 디자이너 장광효와 동문이었는데, 장광효의 말에 따르면 위 아래 항상 검은 옷을 입고 다녀서 별명이 교복이었다고 한다.

2015년 국민대학교에서 모교의 명예를 드높인 공로로 '자랑스런 국민인상'을 수여했다.

취업준비생 시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야구연습장을 많이 다녔고, 오락실에서 갤러그 150만점까지 기록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호황기에 진입하고 있던 당시에는 그리고 대학생의 수가 적었던 당시에는 대학교 4학년 때 입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취준생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였다.

1984년 MBC에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MBC에 입사하기 전에는 KBS와 조선일보 판매국에서 일한 적이 있었으나 금방 그만뒀다. 조선일보 판매국에서 일하면서 아나운서 시험 준비를 했던 듯하다. 친구들이 방송반 경력도 있고 어울리니 시험 보라고 권유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아나운서가 된 이후로 MBC에서 빠른 속도로 아나운서로 입지를 다져서 입사 2년만에 마감뉴스와 아침 뉴스의 진행을 맡을 정도였으나 손석희 본인은 기자를 하고 싶어해 회사에 여러 차례 요청한 끝에 1986년 보도국으로 발령나 기자가 되었다. 
기자 시절 서울시청 출입 기자로 활동했다.
기자 생활 동안 특종을 전혀 잡지 못하여 기자로서 능력을 인정받는 데 실패했고, 결국 1년 만에 아나운서로 재발령되었다고 한다.
아나운서국으로 복귀하여 1987년 2월에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가 되었다.

다만 아나운서 방송초기 당시에는 MBC가 명목상으로 공영방송이었지만 실질적으로 관영방송이었던 관계로 당연히 땡전뉴스를 진행했다.
주말 뉴스를 맡았기 때문에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보도를 할 일은 많지 않았지만, 주말에 대통령이 불시에 전방부대를 시찰한 것이나, 국경일 경축사 등의 뉴스를 땡전뉴스 형식으로 보도했다.
평화의 댐 모금방송도 손석희가 MC를 맡아 진행했다. 손석희 본인은 "어용방송을 진행했을 때 자괴감이 들었다"고 하며, 훗날 방송민주화 운동 및 파업에 뛰어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어쨌거나 손석희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6.10 항쟁,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 13대 대선, 13대 총선, 1988 서울올림픽, 5공 청문회가 펼쳐지는 격동의 시기 동안 1989년 10월까지 주말 MBC 뉴스데스크와 MBC 뉴스센터 앵커직을 맡는다. 이때가 1988 서울올림픽과도 겹쳤던 시기이기 때문에 20년 뉴스 보기를 통해 당시 올림픽이 진행되었을 때 날짜를 잘 검색해보면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손석희 앵커가 올림픽 특집 뉴스데스크를 진행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여하간 1989년까지 뉴스데스크 앵커직을 맡았다가 1990년에는 저녁 뉴스 앵커를 맡게 되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는 아침 뉴스 진행을 맡게 된다.(MBC 뉴스와이드, MBC 뉴스투데이, MBC 아침 뉴스 2000)

아나운서 생활 때 만난 6살 연하의 아나운서 신현숙과 1년 7개월 열애 끝에 1987년에 결혼했다. 참고로 손석희-신현숙 이후 MBC 아나운서국에서는 문지애-전종환 전까지 25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사내 커플이 나오지 않았다.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민주화 바람으로 사회 분위기가 급변하던 1988년 8월, MBC 노조가 정부의 방송 관련 법에 맞서 쟁위 발생 신고를 하고 조합원 모두가 가슴에 공정방송 리본을 달기로 하지만, 패용자가 모두 빼앗긴다. 주말 뉴스데스크 진행자였던 그는 갈등하다가 리본을 재킷 겉옷이 아닌 안쪽 와이셔츠 주머니에 달았다. 손석희는 이것을 '기억하는 한, 가장 수치스럽고 기회주의적인 행동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자괴심에 시달리다가 다음날인 8월 21일엔 제대로 달고 나갔다. 해당 날짜의 뉴스데스크. 그의 양복에 '공정방송'이라고 쓰인 리본이 달린 걸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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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귀에 도청장치 방송사고 당시 보도내용

이 외에도 앵커 시절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공판을 모두 중계한 기록을 갖고 있다. 손석희의 시선집중 방송 때 브리지트 바르도와 인터뷰한 전력이 있으나, 시선집중 7주년 기념행사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인터뷰 대상을 다그친 사례로 들었다. 말이 안 통하는 대상이라고.

이후, 1992년 가을에는 MBC 노동조합 활동으로 국민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심게 된다.

사실, 손석희의 사진을 찾아보면 웃는 사진이 별로 없긴 하다. 위 사진도 네이버에서 '해맑은 손석희' 로 검색하면 나오는 유일한 사진이기도 하다. 참고로 워낙 젊어보여서 실감하기 힘들지만, 이 당시 만 36세였다.

당시 손석희 아나운서는 체포된 이후 "상식적 판단에서 옳은 일이라면 바꾸지 말자. 내가 죽을 때까지 그 원칙에서 흔들리지 말고 나가자."라는 말을 남겨서 눈길을 끌었다.

당시 12월 대선을 앞두고 봄부터 여당에게 비판적인 PD수첩과 뉴스보도를 금지하고 노조간부들을 지방 한직으로 발령내는 등의 조치가 잇따르자, 즉시 노조가 반발을 하면서 파업이 일어났다. 결국 9월부터 52일 간 진행된 파업은 전투경찰의 투입으로 끝났다. 그는 이 때 주동자로 몰려 구속, 동료 몇 명과 함께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됐는데, 정확히 말하면 당시 손석희는 노조 간부도 아니었기 때문에 주동자라고 보기는 힘들다. 파업 참가자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본보기로 찍힌 사례다.

여담으로 이 때 이미 미남으로 유명해서 관련 보도 중에는 "누가 이처럼 선하게 생긴 미청년을 파업 현장으로 내몰았냐?"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당시 여성 앵커의 상징이었던 백지연도 다른 노조 간부들과 비슷한 수준의 중징계를 받았다.

훗날, 김주하 앵커는 2011년 출간한 <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에서 손석희 앵커와 일화를 공개했는데 "존경해 마지않던 손석희 앵커와 파트너가 된다니… 공정방송을 위해 저항하다 수갑을 찬 채 차에 오르고, 그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던 흑백사진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그분과 뉴스를 한다니!"라고 서술하기도 했다. 여기서 수갑을 찼던 것은 역시 노동조합 파업 사건 때문이었다.

 1997년, 불혹을 넘긴 나이에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국제 민간단체에서 장학금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사측에서 1년 갔다 오라는 것을 "쉴 바에야 확실히 쉬자"고 2년을 고집했는데, 공부만 하다 왔다고 한다. 유학을 위해 쳐야 하는 토플 공부부터 시작해, 미네소타 대학교 대학원에서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취득한다. 당시 미국 유학 때 찍은 프로그램 중 하나가 '손석희의 미국탐험' 으로, 그는 이 프로그램을 언급하며 '방송 역사에 길이 남을' 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그만큼 고생하기도 했고, 애착이 간다고 한다.

귀국하여 1999년 아침뉴스 2000(現 뉴스투데이)를 통해 방송에 복귀했고, 2000년 MBC 라디오의 아침 시사 프로그램인 <시선집중>의 진행자가 된다. <시선집중>은 지상파와 인터넷에 밀리던 라디오의 시사보도와 의제설정 역할을 되살린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다. 아침 6시 15분부터 시작하는 프로그램이라서 초창기에는 섭외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언젠가부터는 정치인이나 유력인사들이 먼저 연락해 온다고 한다. 참고로 동명이인 프로게이머도 준프로 시절에 여기에 출연했던 적이 있다.

2002년 유시민의 뒤를 이어서 100분 토론의 3대 진행자가 되었다. 2009년 11월 19일 10주년 방송 때까지 진행한 역대 최장수 진행자였으나 결국 10주년 방송이후로 하차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해서 MBC측은 제작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라고 해명했으나 MBC가 그리 돈에 쪼들리는 방송국도 아니고 7년이나 하던 100분 토론의 간판이나 다름없던 인물을 갑자기 치운다는건 의아할수 밖에 없고, 이에 대해 MBC의 후배인 최승호 PD는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에서 "방송문화진흥회가 극우인사들로 점령된 뒤 손석희 아나운서가 100분 토론에서 물러나게 되었다."라고 소회하였다.

목요일이면 밤에 100분 토론을 진행하고 숙직실에서 쪽잠을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서 시선집중 라디오 생방송을 하는 생활을 몇 년 동안 했다고 한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MBC 아나운서 국장으로 재직했으며, 2006년 MBC를 퇴사하여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로 옮겼다.

2011년 8월 24일에 치러진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물러나고 보궐선거가 예정된 상황에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시장후보 출마를 묻는 질문에 '다 나가면 소는 누가 키우겠나'라고 소 드립을 날렸다.

이 선거를 앞두고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나경원 의원과 토론을 하던 도중, 손석희가 나경원 의원을 둘러싼 의혹들에 대한 검증성 질문을 계속 하자, 나경원 의원이 "정책이나 공약이나 이런 건 안 물어보시나요? 저는 사실 손석희 선생님의 인터뷰를 거의 해 본 적이 없거든요. 야권 후보는 많이 하셨더라고요. 저희가 예전에 보니까 그래서…"라고 불만을 토로해 설전을 벌인 일이 있다. 다만, 그때 당시 손석희는 아직 박원순 후보와 토론을 하지 않았고 그 당시에 <시선집중> 인터뷰는 가능하면 정책 위주로 가려고 하는데 한쪽에서는 네거티브라고 하고 한쪽에서는 후보 검증이라고 하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문제에 조금 더 질문이 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결국, 나경원 의원이 "보통 언론에서 형평을 기한다는 이유로 좀 수준과 차원이 다른 이야기를 자꾸 꺼낸다"고 말하자 손석희는 "일반적인 언론이 그렇게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느낌을 말씀하신 건가요?"라는 대답을 했고, 곧 주제가 바뀌면서 토론은 다시 좋게 진행되었다.

2012년 2월, 진중권에게 시선집중 제작진이 출연을 요청하자 진중권 측이 거부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새누리당 영입설이 나왔던 적이 있었지만, 본인은 거절했다고 한다.

여기까지 보면 알겠지만 손석희가 가지고 있는 MBC라는 조직, 라디오 방송에서의 존재감은 당시에 엄청났다. 그렇기에 MBC 내부에서 김재철 MBC 사장이 부임한 이후 자르고 싶은 라디오 진행자 리스트에 배철수와 함께 높은 순위에 랭크되어 있었지만, 건드리기에는 너무 타격이 커서 인사 칼바람이 피해갔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손석희가 떠난 이후 공석이 된 시선집중은 이재용 아나운서가 후임으로 들어갔으나 그 때 임시인지 전담인지 확실히 나오지 않아 아직 명확히 알 수 없는 와중에 이전 손석희의 땜빵을 모두 이재용 아나운서가 매웠던 만큼 전담일 거라는 의견이 높았으나 결국 얼마안가 김창욱 아나운서로 바뀌었고 김창욱 아나운서가 이를 이어받았으나 하필 그 당시 대전 MBC에서 일이 제대로 터지면서 그 수습으로 김창욱 아나운서가 사장직을 맡기로 하면서 다시 공석이 되자 다시 이재용이 맡았으나 이것도 임시였고결국 산동호 아나운서가 정식 2대 진행자로 들어왔으나 4년이 지난 2017년에 하차한뒤 이후 몇명의 후임들이 1년도 못가고 계속 자리를 바꾼 와중에 2019년 현재는 심인보 아나운서가 담당하고 있다.

2013년 5월 9일, 종합편성채널 JTBC로 옮긴다는 보도가 나왔다. JTBC에서 보도 담당사장직을 맡기로 했다고. 5월 10일 시선집중 마지막 방송을 끝으로 하차했다. 마지막 인사말을 전하면서 목소리가 좀 잠기고 억양도 살짝 떨리는 등, 심적으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로 MBC내에서 보낸 13년의 기나긴 여정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그의 팬들은 손석희의 말처럼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도 지금처럼 정론의 길을 걷기를 바란다면서 성원을 보냈는데 가는 곳이 다른 곳도 아니라 항상 중립주의였던 그가 종편의 간부로 간다는 게 꺼림직하단 의견도 있었고 손석희의 매형이 JTBC의 대 PD인 주철환인지라 매형의 영향력으로 낙하산 인사로 들어간게 아닌가하는 기사도 나왔었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이후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선 중앙일보와는 논조가 다를 것이라고 말했으며 한국일보와의 인터뷰를 봐도 원래 성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의사표명을 드러내는데, JTBC 자체도 원래 삼성만 빼면 은근히 정치적 중립에 가까웠던 만큼 손석희 또한 삼성을 비판하는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있었으나 들어가고 얼마 되지도 않아 대놓고 비판했다.

이 때 첫 출근에 관한 웃긴 일화가 있는데, JTBC에서 지정한 손석희의 출근시간은 10시였던 만큼 기자들도 10시에 사진을 찍을수 있도록 진을 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손석희는 이전 MBC시절처럼 이미 1시간이나 전인 9시에 출근한 뒤였기 때문에 뒤늦게 다시 내려와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손석희의 JTBC행 이후로 부터 2018년 말, JTBC라는 방송사의 대표이사로 올라서기 까지의 직책은 보도담당 사장이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초기에는 인사권은 없었고 다만 인사 담당자에게 의견을 내는 수준이었다 한다. 이따금씩 뉴스룸 대신 진행되는 특집토론에서 보여지는 모습으로는 보도 부문의 편성에 대해서도 별도의 권한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4년 1월 1일, JTBC 뉴스 9의 신년 특집에서는 100분 토론을 그만둔 지 4년만에 토론 진행을 했다. 

JTBC 뉴스 9 진행 1,000일을 맞아 여성중앙과 인터뷰를 했다. .

2013년, 당시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에 대한 보도평가와 관련하여 지상파 3사보다 JTBC 뉴스가 압도적인 보도 횟수를 자랑했다. 2013년 12월 19일, 결국 이와 관련하여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 9' 가 편파보도로 중징계를 받았다. . 반면에 방송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을 종북이라고 발언을 해서 물의를 빚은 정미홍 전 아나운서가 출연한 TV조선 뉴스쇼 '판'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징계로 넘어가서 다소 논란이 일기도 했다.기사

2014년 4월 16일 JTBC 뉴스 9에서 세월호 참사를 보도하면서 이야깃거리가 나왔다. 우선, JTBC 기자의 망언에 가까운 표현으로 분위기가 안 좋던 상황에서 가장 먼저 사과했다. 의례적인 사과와는 달리 댓글 등을 통해서도 진심을 담은 사과였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평소의 언행이 인정을 받았기 때문일 듯 하다. 또한, 내부 보도에서도 순간적으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손석희는 안전설계 전문가와 전화 인터뷰를 하던 도중 구조대가 침몰한 배에 공기를 주입해 생존 확률을 높이는 작업에 관해 얘기했으나, 전문가는 "여객선 운행 특성상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답했다. 이어 전문가의 상세한 설명을 들은 손석희는, 혀를 차다가 몇 초간 말을 잇지 못했다. 다음 질문을 기다리던 상대방이 '전화가 끊겼나??' 하고 당황했을 정도. 손석희는 바로 질문을 이어갔지만 목이 멘 소리를 내는 등 냉정을 찾기 힘든 듯했다.7분 20초부터. 또한 4월 21일 방송에서는 실종자 가족이 전화 인터뷰 직전 딸의 시신 발견으로 급히 자리를 비웠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눈물을 삼키는 모습을 보였다. 관련 영상.

2014년 4월 24일부터 29일까지 세월호 참사 보도를 위해 전라남도 진도군 팽목항에서 JTBC 뉴스 9를 현지진행했다. 따로 마련한 세트나 특별한 의상, 메이크업도 없이 현장으로 나와서 직접 보도를 하며 실종자 가족들과 아픔을 함께 하는 뉴스로 호평을 받았다. 이를 통해 국민적인 관심과 신뢰를 이끌어내 어지간한 지상파 방송에 근접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손석희가 입사하기 전 JTBC 뉴스의 수준을 보면 한 사람으로도 방송사와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2014년 9월 22일 JTBC 뉴스 9이 JTBC 뉴스룸으로 개편되었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

2016년 10월 24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손에 꼽는 역사적인 보도를 진행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JTBC 뉴스룸/주요 보도 참조.

2018년 11월 20일부로 JTBC 보도담당 사장에서 공동 대표이사로 승진 임명되었다. 이와 더불어 손 사장의 종전 직인 '보도담당 사장'직은 폐지 되었다.

2019년 12월 23일, 장장 6년 4개월 여의 메인앵커 직을 2020년 1월 6일 부로 하차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후임은 서복현 JTBC 정치팀 기자로 정해졌고, 대표이사 직함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전했다.

시사저널이 선정한 영향력 1위 언론인에 15년 연속 뽑혔다.
2013년 언론인 영향력·신뢰도 설문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10월 26일 대학생들이 뽑은 가장 좋아하는 언론인 1위를 차지했다.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을 많이 맡아 대중적인 영향력을 갖춘 방송인으로 꼽히고 있다. 국내 방송에서 최초로 아나운서와 기자를 겸직한 인물이다. 아나운서로 입사했지만 한때 보도국에서 기자로도 활동했고 이후 아나운서국으로 복귀하여 아나운서 국장까지 역임했다. 
2009년 MBC 연기대상에서 시선집중으로 라디오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시상자는 예전에 자신이 뉴스 멘트를 쓰는 법을 알려주고 입사 초기 기자 시절 뉴스 진행 때 울려버리기도 했던 김주하 앵커.
언론계에 떠도는 카더라에 따르면 손석희가 국민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아나운서에서 뉴스 앵커로 발탁되고 아나운서임에도 불구하고 기자로 전직하여 뉴스를 담당하게 된 것이 이순자 여사 또는 당시 군부 핵심 관계자의 눈에 들어서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꽤 오래된 이야기이며 손석희 본인도 한 강연에서 이러한 소문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소문은 소문일 뿐 진실은 알 수 없다.

손석희가 자신의 이름을 건 책이 딱 1권 있다. 1993년에 출판된 <풀종다리의 노래>라는 수필집으로 1992년 MBC 파업과 자신이 MBC에서 생활하며 느꼈던 점들을 서술해놓았다. 1993년의 손석희와 현 시점의 손석희는 많은 갭이 있을 순 있지만 이 책을 읽어 보면 '손석희란 사람이 어떠한 생각을 가진 사람인가' 하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다. 책 이름인 <풀종다리의 노래>는 MBC 파업으로 손석희를 비롯해 많은 노조원들이 구속되자 부산MBC 노조 조합원이자 아동문학가인 배익천 씨가 쓴 동화 제목이다.
방송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것과는 다르게 의외로 사진 찍는 것을 매우 부끄러워한다고 한다. 여성중앙과의 인터뷰손석희표 뉴스를 묻다 때 사진 촬영 장소까지 함께 온 직원들에게 "쑥스럽다. 쳐다보지 말라."라고 했을 정도로 어색해 한다고.
손석희를 찍은 사진을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헤어스타일이 항상 같다는 것. 이유는 30년 동안 MBC에 있으면서 구내 이발소만 사용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JTBC로 옮기고 난 뒤에도 헤어스타일은 크게 변화가 없다. 그 이유는, 인터뷰에 따르면 아직도 자신의 헤어스타일을 수십 년 동안 만져온 MBC 근처 이발사에게 가위질을 맡긴다고 하기 때문. 고로 저 헤어스타일을 하고 싶으면 MBC 근처 이발소로 가자. 그런데 MBC는 지금 상암동으로 이전하지 않았나? JTBC도 상암동에 있는데?
국민대학교 시절에 위아래 항상 검은 옷만 입고 다녀서 별명이 '교복(가난했기 때문에 그럴 지도)'이었고 아나운서 국장 시절에 차고 있는 손목시계 역시 한 때 화제가 되었다. 엄청난 거액의 명품이라서가 아니라 군인들이나 찰 법한 카시오의 2만 원짜리 저가 전자시계라서 화제가 되었다(가장 위 2011 사진의 시계). 또 2010년대 중반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는데, 기자가 본문에 첨언하길 "20년 된 자켓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 다른 이미지. 참고로 지금도 그 시계를 차고 있는 것 같다. 덕분에 외모를 꾸미는 것에 신경을 안 쓰며 금전적으로 매우 소박하다는 이미지가 생겼다.
싸구려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며 검소한 이미지로 유명하지만, 차는 최고급 승용차인 제네시스 EQ900을 타고 다닌다고 한다. 2017년 4월 과천에서 접촉사고를 내고 도주했던 사건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EQ900을 타고 다닌다는 사실도 함께 알려지게 되었다. 제네시스 EQ900은 국산차 중 가장 비싼 차량이며, 가격은 8000만원에서 시작하여 풀옵션은 1억 2000만원이 넘는다. 고급 외제차의 대명사 벤츠 e클래스보다도 훨씬 비싼 가격이다. 제네시스 EQ900은 2015년 12월 11일에 처음 출시되었기 때문에 중고가 아닌 신차로 구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금전적으로 소박한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는 재테크의 레전설이라고 한다. MBC 아나운서 국장을 거치고 미국으로 자비 유학을 갔다온지 4년 만인 2003년 7월 부촌으로 이름난 평창동의 시가 20억 원의 저택을 구입하여 화제가 되어기도 했다. MBC 아나운서 평사원 월급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재테크라 당시에 크게 화제가 되었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MBC 보도국장 당시 연봉은 약 8,000만원, 성균관대 겸임교수 급료는 월 80만원 수준으로 추산되며 손석희의 연봉과 부동산을 종합하여 추산한 재산은 최대 7억원 정도였다. 참고 2003년 당시 강남 30평대 아파트 가격이 약 2억원하던 시절이었다.
김주하 아나운서의 인터뷰를 비롯하여 MBC 시절 후배 기자들의 언급으로 보면 젠틀할 것만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욕을 걸쭉하게 하는 무서운 선배였다고 한다.

현대기아차 신입사원 수련회 때 초청 강사로 와서 한 이야기 중에 손석희 선배 이야기가 절반이었는데, "방송국 앵커들 중에 손 선배한테 욕으로 싸닥션 안 맞아본 사람 없을 것"이라고. 흠좀무. 자서전격 저서에서는 "나를 키운 건 8할이 손석희라는 악몽이었다", "손석희와 뉴스 진행은 고통의 시간"이라고 했을 정도.  한번은 손석희한테 엄청 혼나서 울음을 터트리자 "서운해 하지 마라. 싹수가 보이니까 매정하게 구는 거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주하가 책을 쓴다고 하자 손석희가 "책을 쓰는 것은 아이를 낳는 것과 똑같다. 아내가 아이를 낳는데도 옆에서 원고를 쓸 수 없었는데, 네가 무슨 수로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글을 쓰느냐."라고 말하면서 절대 책을 쓰지 말라고 말렸다고 한다. 하지만 김주하 본인은 손석희가 쓰지 말라고 하자 근성이 생겨 책을 쓰게 되었다나.
근래에는 JTBC 뉴스룸 소셜 라이브에서 후배 기자가 졸라서 옷이나 장갑을 뜯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한 번은 관제 데모 이야기를 하는데 후배 기자가 "젊지 않은 선배님이 젊은 저희들에게 설명해 주십시오"라고 말하자 웃으면서 "옛날 얘기하는 사람을 꼰대라고 그러던데, 여러분이 저를 꼰대로 만들려고 이런 질문을 한다는 걸 잘 압니다."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JTBC 안나경 아나운서 역시 "손석희 사장님은 츤데레 매력이 있으시다. 무심한 듯 챙겨주신다. 뉴스룸을 함께 한다고 했을 때도 소문대로 무섭게 다그칠까 걱정했는데 그런 건 전혀 없다. 평소에는 신세대 용어도 섞어서 대화를 나누고 편하게 대해주신다."고 말했다.
김성주 아나운서에 따르면 은근히 뒤끝이 있는 성격이라고 한다. 김성주 아나운서가 평소에 좋아하던 음악 CD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가져가서 좀 들어도 되겠느냐"고 물어봤는데, "어, 그래 가져가."라고 해서 "나 가지라고 주나보다." 생각하면서 가져갔는데 1달쯤 지나서 단 둘이 있을 때 "CD를… 먹나?"라고 CD 왜 안 돌려줘? 물어보더란다. 다만 김성주 아나운서가 황금어장에 출연해 이 사실을 밝히자 강호동이나 김장훈 등 같이 출연했던 패널들 모두가 "손석희 아나운서가 제대로 정확하게 지적했는데 왜 그러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2018년 4월 2일 냉장고를 부탁해 방송분에서 김성주 아나운서가 다시 손석희와의 에피소드 하나를 회고하기를, 본인은 원래 입사 초부터 예능 쪽에서 뛰고 싶었지만 뉴스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아서 속으로만 앓다가 급기야 머리를 울긋불긋하게 염색을 하고 출근을 해버렸고, 그걸 본 손석희(당시 아나운서국 보도부장)가 바로 불러서 (머리를 가리키며) "왜 그러는 거야?"라고 짧게 물었을 때 "부장님, 교양 예능에 집중하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해야 할 것을 기에 눌린 탓에 입이 안 떨어져서 그만 "그냥 한 번 해봤는데요"라고 답했고 손석희는 짧게 "원위치 시켜"라고 한 마디했다. 그 말에 김성주는 바로 미용실 가서 흑발로 재염색했다나... KBS 출신 조우종도 MBC 신입 아나운서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손석희 선배님이 심사위원으로 있었고, '수험번호 OO번 조우종입니다' 했는데 "네. 가세요."라면서 더 이상의 면접을 보지 않았다고. 이어 "그래서 그 때 저 정도 자리에 가면 말 한 마디만 들어도 실력을 알 수 있겠구나 했다. 나중에 제가 KBS 아나운서 면접 담당관이 되어서 신입을 뽑는데, 절대 그 말 한 마디로는 그 사람 전체를 파악할 수 없더라."라고 말하며 억울해했다. 이를 들은 장성규가 "제가 아는 손석희 사장님은 그럴 분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면서 "분명히 결격 사유가 본인에게 있었을 것이다. 본인에게서 이유를 찾으라. 아주 치명적인 사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해 웃음을 안겼다.
원래는 담배를 피웠으나 지금은 금연 상태라고 한다. 과거 80년대에 손석희가 한창 담배를 피던 시절, 갑자기 태풍이 오는 바람에 다른 앵커가 회사로 오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그날 당직이었던 손석희가 뉴스 특보에 들어가서 10시간 넘게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방송 중 기자가 연결되어 카메라가 넘어가자 기자가 멘트하는 동안 손석희는 스튜디오에서 담배를 피고 있었는데, 기자 연결이 끊기면서 갑자기 카메라가 손석희에게 넘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손석희가 손에 담배를 들고 있는 모습이 몇초간 전국에 생중계 되었다고 한다.... 썰전 12회에서 손석희 사장의 자기 관리를 설명하며 그가 출근하면 신문을 보면서 담배를 '딱 한 개비'만 피운다는 불가능한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이후 썰전에서 정정하기로 한 개비만 피우는 게 아니라 아예 금연했다고 한다. 본인이 JTBC 임원 회의 때 자신은 현재 금연이라고 직접 언급했다고. 2015년 3월 5일 JTBC 뉴스룸 2부 팩트 체크에서도 "11년 전부터 금연 중"이라는 말을 했다. 이쯤 되면 훌륭한 비흡연자이다. 다만 한창 담배 피우던 2000년대 초반 시절에 손석희를 알던 지인들 왈론 실제로 그가 하루에 담배 1~3개씩(!) 밖에 안 피웠다고 한다. 그 소문이 와전되어 썰전 작가들 귀에까지 들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뉴스룸 팩트 체크 200회에서 '손석희에 대한 팩트 체크를 희망하는 시청자가 있다'라는 얘기 도중 "담배는 13년 전 금연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17년 3월 16일 소셜 라이브에서 "기억에 남는 방송 사고가 없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크게 2가지 일화를 소개했는데, 하나는 바로 위에 있는 담배 생방송 얘기고, 다른 하나는 신입사원 시절에 뉴스를 진행하다 조명이 터져 뜨거운 유리 파편이 머리와 어깨 위로 떨어졌는데, 본인이 스스로 이야기하길 '둔한' 편이라 화면이 넘어가고 나서야 식겁했다고 한다. 이에 선배들이 "신입인데 아주 담대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평소 정치인의 빈소에 잘 가지 않았지만, 고 노회찬 의원의 빈소에는 참석했다.

JTBC랑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루머가 돈 적이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손석희는 JTBC와 7년 동안, 그러니까 2020년까지 일하기로 계약하고 왔기 때문에 재계약 문제는 그 이후에 논의될 문제이다. 

2001년과 2004년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의 겸임교수를 지냈다. 강의식 수업은 아니고 교양 과목으로 '말하기와 토론' 수업을 진행했다. 손석희 본인과 토론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토론 때 아예 전제를 흔들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는 증언이 있다. 다소 반칙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애초에 토론하러 나오는 입장에서 자신의 주장에 대한 기본적인 팩트체크도 하지 않고 나와서 그것을 마치 옳은 것마냥 주장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당장 게임의 유해성에 관련한 100분 토론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데, 해당 토론의 경우는 한쪽이 자신이 맞다고 일방적으로 무논리로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토론 진행자조차 그쪽 전제만을 편들기까지 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어서, 토론 와중에 양쪽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사회자의 입장에서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야 하고 양쪽 모두의 의견에 귀 기울이면서도 양쪽이 주장하는 의견에 깔려 있는 전제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는 태도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당시 수업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렸다고. 학력 컴플렉스를 자주 드러냈다는 증언도 있는데 이게 문면만 봐서는 진지하게 열등감을 표출하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흔히 말하는 자학개그의 일종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최종 학력이 석사임에도 불구하고 2006년 3월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전임교수로 임용되었다.
성신여자대학교에서도 똑같이 '말하기와 토론' 수업을 맡았는데, 토론에서 학생들을 상당히 하드하게 다뤘다고 한다. 수업 자체가 마찬가지로 손석희와 토론인데 그러다보니 눈물을 머금으며 나가는 학생도 많다고 한다. 성신여대생들이 이 수업을 '말하기와 토하기'로 불렀다고 하는데, 진실인지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손석희 본인이 스스로 강의계획서에 "학생들이 이 수업을 '말하기와 토하기'로 부른다"고 적어놓은 것이 캡쳐되어 인터넷에 떠돌면서 유명해졌다. 또 커리큘럼엔 타 대학과 토론 배틀을 붙는 수업도 있었다. 수시 논술고사에서 직접 시험 감독을 맡고 있었다는 증언이 디씨 등을 통해 흘러나오기도 했다. 논술고사가 끝나면 사진과 사인 공세에 많이 시달렸다고.
육군군수사령부 본부에서 비서실 행정병으로 군 복무를 했으며, 군수사 초청 강연에 온 적이 있을 정도로 군복무 시절 근무지에 대한 나름의 애정이 있다고 한다.
F 발음이 들어가는 외래어를 유난히 신경써서 발음하는 편이다. 그 예로 펀드(fund), 차명폰(phone이 /f/ 발음이다) 등.
2012년 10월 30일 초록창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라왔다. 이유가 뭔고 하니 오전 6시에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시선집중에 1시간이나 지각을 한 것이다. 지각을 했을 뿐인데 실검행! 지각 이유는 시차 적응을 못해 늦잠을 자서 지각을 했다고 한다. 그도 사람이었다 바로 요전까지 특집이라고 유럽 가서 방송을 하는 기획이 있었고 게다가 덤타로 EBS에서 방송하는 다큐멘터리(3부작인 킹메이커)의 진행을 맡았던 지라 귀국하고 시차 적응을 못 했다고 한다. 이 분과는 정 반대로 인터넷 기사에서 말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교수님도 사람이다', '인간적이다' 등의 호의적 반응들이 많다. 참고로 손석희가 시선집중을 진행하면서 지각한 전력은 12년 역사상 딱 3회인데 그중 1회가 바로 저 일이다. 나머지 2회는 2007년과 2011년의 폭설 때인데 천재지변이라 어쩔 수 없었고. 당시 공백 동안 대타 진행은 류수민 아나운서가 맡았다.
웹툰 작가 윤태호와의 인터뷰에서 윤태호가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 만화를 그렸다"니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면서, "당시 <철인>이라는 만화를 워낙 잘 그렸고, 그걸 많이 뿌렸다"고 한다. 본인이 만화를 그리면 다른 애들이 숙제를 대신 해왔다고.
시선집중에서 연말 기념으로 아이유와 함께 방송을 진행한 적이 있다. 시선집중에 처음으로 나온 아이돌이라고. "뭘 해도 안 예쁘겠느냐"라면서 아이유의 팬을 자처했다. "다만 삼촌팬 하기에는 나이가 많고, 나는 거의 큰아버지급 팬"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가수 김종서의 팬이라고 한다. 미국 유학 시절에 김종서 3집 테이프 하나만 들고 가서 주야장천 들었다고 한다. 후배 아나운서들에 증언에 의하면, MBC 아나운서 국장 시절에 회식 자리에 가면 항상 김종서의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높은데도 잘도 부른다고 한다.
한 신문 인터뷰에서 밝힌 본인의 말로는, 갤러그 등 고전게임을 매우 잘한다고 한다. 갤러그로 150만 점을 기록해 본 적도 있다고. 근데 오래된 일이라 착각한 건지 모르겠지만, 갤러그는 100만 점에서 자동 리셋되기 때문에 과장한 것 아니냐는 말도 있다. 아님 기자가 잘못 썼거나 아님 저 발언을 사실이라고 보면 100만 점 기록하고 50만 점 더 기록한 것을 뭉뚱그려 150만점 기록했다고 한 것일 수도 있다. 사실이라면 흠좀무.
진행에 있어 중립을 지키는 것으로 이름난 손석희지만, 그렇기 때문인지 가끔 드러나는 인간적인 면이 더 화제가 되곤 한다. 실제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시선집중에서 사고대책본부 관계자와 전화 인터뷰를 하던 도중 관계자가 당시 피해 승객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투의 답변을 하자 손석희는 "그런 말씀하시면 안 된다"며 질타한 적이 있다. 손석희 "지하철 호통", 지하철 참사 정곡 찌른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 또 2014년 세월호 참사 관련 인터뷰 도중 냉정을 잃은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손석희 앵커 침묵. 그리고 그 다음 날 이어진 사고 관련 보도에서 실종자 아버지와 인터뷰 중 방송 하단에 추가 사망자 발견 소식이 나오자 약 5초 동안 인터뷰를 멈춘 채 침묵하더니 이내 낮은 목소리 톤으로 "자막은 넣지 말아주시고요"라고 뉴스 제작팀에 요구했다. 또 자신이랑 친분이 있었던 노회찬 의원이 사망했을 때는 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눈물을 참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노회찬의 생전 어록을 담은 리포트가 나간 이후에는 몇 초간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그리고 비하인드 뉴스에서 관련 소식을 다룬 뒤에는 '아이고 참'이라고 멘트하기도 했다.
개그 콘서트에서 현대생활백수의 당하는 역할로 이름을 알렸던 개그맨 강일구는 손석희를 패러디한 '손석회'라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100분 토론을 100초 토론으로 바꾼다든가…
2015년 12월 29일 트위터 활동을 시작했다. 계정을 생성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았지만 팔로워가 16,000명을 넘어가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다만 2016년 2월부터 사실상 잠수 상태.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면서 트윗보단 페북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링크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진행한 JTBC 페이스북 라이브에서 JTBC 예능을 주로 즐겨본다고 밝혔다. 밝힌 바에 따르면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과 아는 형님을 자주 본다고 한다. 

JTBC 페이스북 라이브 총선방송 댓글Q&A. JTBC 드라마 욱씨남정기도 의미 있고 재밌는 것 같다고 칭찬했다.
억양은 현대 서울 방언이나 표준어 억양이 아닌 서울토박이 사투리에 가깝다. JTBC로 넘어가면서 MBC 시절보다 서울 토박이 억양이 좀 더 강해진 느낌이다.
체조선수 손연재와 인터뷰를 2번 했다. 첫 번째는 시선집중 시절이고, 2번째는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금메달 따고 뉴스룸에서. 인터뷰를 할 때마다 본인의 방송을 듣느냐고 묻는데, "같은 손씨인 집안 어른이 하는 프로그램이니까 가끔은 들으라"고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다음 번 올림픽 끝나고 다시 만나자고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배우 윤여정이 손석희의 팬인데, 2016년 뉴스룸 인터뷰 당시 윤여정이 돌발 질문으로 "'앵커 브리핑'을 본인이 직접 다 구성하는 거냐 아님 작가들과 회의해서 주제를 정하는 거냐"고 묻자, 사뭇 당황하면서도 웃으면서 "주제는 다 같이 논의해서 정한다"고 답변했다. 참고로 이 앵커 브리핑이 나름 유명해서, 대학생들 사이에 PT 교본으로 애용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2016년 김혜수 주연작 굿바이 싱글이란 영화에 주민호라고 손석희를 패러디한 캐릭터가 나온다. 극 중 김혜수 왈 "이 나라에서 제대로 된 남자는 저 사람뿐이야. 다만 키가 아쉽다 키가"
2016년 10월 24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해 대통령 연설문 유출 물증 확보와 관련된 단독 특종을 내보내 10월 25일 하루 종일 손석희와 관련 인물들이 인터넷 실검을 장식했고, 결국 이 보도의 파장으로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사과까지 나왔다.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보도를 이어가면서 뉴스룸은 사상 최고 시청률을 연일 갱신하며 KBS를 비롯한 MBC, SBS 뉴스를 모두 꺾고 동 시간대 뉴스 시청률 1위에 등극했다. 이에 네티즌들 사이에선 "KBS 대신 JTBC에 수신료를 주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또 '이런 때일수록 겸손하고 자중하자'며 손석희가 JTBC 보도국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트라이버튼의 설문에 따르면, 2016년 11월 8일 현재, 응답자의 55.6%가 손석희의 정계 진출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손석희 본인도 별다른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일본의 어느 방송국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도하면서 손석희 앵커의 이력을 소개하는 등 매우 주목하고 있다.
2016년 11월 28일, 문재인 전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훈훈한 분위기를 예상했으나, 예상하지 못한 날카로운 질문을 통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중도를 지키는 언론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에 문재인 지지자들은 "지나쳤다"고 주장하며 손석희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2016년 12월 9일은 금요일로 JTBC 뉴스룸은 전진배 기자가 앵커로 진행하고 손 사장 본인은 쉬는 날이었으나, 그날의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본인이 직접 120분간의 특집 편성을 직접 진행하였다.
2017년 2월 15일 앵커브리핑에선 영화 컨택트를 소재로 소통의 가치를 말했는데, 비유 대상이 아무래도 영화다 보니 본의 아니게 스포일러를 누설했다.
현재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다. 기종은 확인하기 어려우나 소셜 라이브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면 여기 중에 하나로 보여진다.
물론 바뀌거나 아닐 수 있다. 현재는 iPhone X의 실버 모델을 사용하고 있다. 소셜 라이브에서 스마트폰을 만지는 모습이 종종 보이는데, 카메라가 세로로 달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종종 뉴스룸 진행 도중에 시리가 작동해 참 당혹스럽다고 한다.앵커 멘트 중에 시리 특유의 소리가 들린다 작동하는 이유로는 시리야라고 부르면 작동하는데 모 분의 이름을 부를 때 나온다고 한다.

2017년 5월 16일 소셜 라이브에서 "창업 생각을 한 적 있냐"는 질문에 "주변 사람에게 자주 하던 얘긴데, 은퇴 후에 공기 청정 카페를 열고자 한다"는 답변을 했다. 죽치고 앉아있을 사람에 대비해 시간제로 운영하겠다는 구상까지 내놓았다.
2017년 5월 17일 소셜라이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손석희는 보도국에 대한 인사권자가 아니라고 한다. 기자들의 발령이나 승진은 보도국장의 권한이지 자기는 마지막에 확인만 한다는 모양. 기자들도 잘 몰랐는지 "새 정권의 인사에 대해 비슷한 인사권자 입장에서 한 말씀을 부탁한다"는 취지의 질문을 하다가 인사권자가 아니라는 대답에 어버버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그 뒤로 몇 번 물고 늘어졌음에도 질문이 다 꼬였는지 쫓겨나듯이 퇴장했다. 안습 물론 최종 결제는 손석희가 하니 결국 손석희의 의중이 반영되는 게 아니겠냐는 이야기도 있으나, 그런 것치곤 소셜 라이브에서 보이는 태도는 인사 발령 등에 대해 애초에 별 관심이 없는 걸로 보여서 의외라면 의외랄 수 있는 부분이다.
싱어송라이터 안녕하신가영의 팬으로 보인다. 벌써 안녕하신가영의 노래가 뉴스룸 엔딩곡으로 6번이나 나왔다.
최근의 인터뷰를 보면 은퇴 이후의 생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생각 중인 듯하다. 소셜 라이브에서는 농담으로 "공기청정 카페를 하고 싶다"고 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다시 학교로 가서 저널리즘 연구를 더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쉼 없이 계속 일해왔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은 생각도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8년 6월 1일 남북 고위급회담 과정에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JTBC 기자 질문에 화를 내면서 언급되었다. '그 선생 잘 하는 거 같던데 왜 이 질문을 하냐' 이런 식으로...
엄청난 강철 체력의 소유자인 듯하다. 1999년 12월 31일 진행되었던 2000 투데이를 10시간 넘게 연속으로 진행했던 기록이 있으며, 100분 토론 진행 시절 토론 진행 후 숙직실에서 쪽잠을 잔 후 다음 날 아침 시선집중 진행을 매주 한 것은 매우 유명한 일화이다. 그리고 시선집중 진행 시절에는 해외 방송 진행 후 다음 날 아침에 나와서 진행한 적도 있다.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인데, 2018년 북미정상회담 싱가포르 현지 진행 때 심야에 긴급하게 진행된 뉴스 특보를 진행한 후 바로 아침 특보에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당일 뉴스룸 현지 진행 후 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와 저녁 개표방송 진행을 다고 한다.
'손석희'라는 이름을 발음하면 'Son Sucky'가 된다고 한다. 뜻은 꼴보기 싫은 아들 그래서 국제적으로 약간 불리한 감이 있다고. 팩트체크에서 본인이 인증했다.7분 12초부터
JTBC 뉴스 9 진행 1주년을 맞아 인터뷰를 가졌다. 기사
손석희의 여러 가지 어록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마사토끼와 도현의 작품인 매치스틱 트웬티에서 '손섷긔' 라는 이름으로 오마쥬되었다.
손석희의 장남 손구용은 대일외국어고등학교를 나와 3~4수 끝에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남 손구민은 해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후 국내 모 대학의 국제학부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12월 서울경제신문 견습기자 공채에 합격했다. 국제학부 출신들이 한국어에 서툰 경우가 많다는 점으로 미루어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라는 반응이 많았다.

본인은 일단 언론인으로서 진영논리를 배제하고 언제나 중립적인 입장에서 사람들에게 시대의 상황을 전할 뿐이라는 입장을 대내외적으로 오랫동안 피력해왔지만, 2019년에 공개된 손석희의 텔레그램 내용으로 보면 진보 성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그의 대중적 인기와 인지도를 노리고 영입을 노리는 정치인들 덕분에 1990년대부터 매번 선거철만 되면 본인의 의중과 상관없이 출마설이 신문에 오르내리긴 했다. 특히 1990년대 후반 15대 총선을 시작으로 정동영, 박영선(MBC), 박성범, 이윤성(KBS) 맹형규, 전용학(SBS), 한선교(프리랜서)등 지상파 방송인들이 줄줄이 정계 진출하자 '손석희도 혹시?' 하는 시각도 있었다. 100분 토론의 전임 진행자들이었던 유시민도 이 인기를 바탕으로 국회의원이 된 바 있고


물론 언론인 출신의 정치인이 종종 보이기는 하나, 이들은 원래 유명했던 인물이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다. 일반적인 기자나 앵커라면 정계 진출이 상당히 특이 사례이고, 인지도도 그리 높지 않아 정계 진출에 유리할 것도 별로 없다. TV 토론회에서 강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한국은 TV 토론회의 비중이 낮은 편이다. 다만 낙선해서 정계를 떠난 전직들이 방송 진행자로 나오는 경우는 가끔 있다.
2010년대 썰전에서 강용석이 밝힌 바에 따르면, 홍준표도 손석희에게 정계 진출(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을 매우 적극적으로 권했다고 한다.

하지만 손석희는 거절했는데, 실제 2011년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당시 한나라당 대표 홍준표가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서울시장 출마설에 대해 서울시장 출마(+한나라당 입당)을 은근히 권유하자, 손석희는 당시 유행하던 개그를 빗대 "저는 영희가 아니라서... 그리고 다 나가면 소는 누가 키우겠습니까?"라는 답변으로 거절한 일화도 있다.소셜 라이브 그 후 6년이 지나고, 2017년 4월 25일에 열린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사회자를 맡았는데, 문재인이 "국민 추천제로 내각을 구성할 계획인데, 손석희 앵커가 국민들에게 내각 인사로 높게 추천을 받는다면 사양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손석희는 "추천 이전에 사양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잠자코 듣던 홍준표가 “소는 누가 키우나 그 말이지요?”라고 물었다. 손석희는 “그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십니까?”라고 언급하여 다시금 회자가 되었다. 네이버TV

실제로도 대놓고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표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정국 직후 한나라당의 장 모 의원 "탄핵 사태는 노무현 대통령이 고의로 유도한 것"이라는 발언을 하자 즉각 "알면서 왜 (탄핵을) 하셨습니까?"고 받아쳤다.해당 기사 탄핵 발의(3월 12일) 이전인 3월 6일에는 새천년민주당의 유 모 의원이 탄핵안 발의가 총선용이 아니라며 "오히려 노 대통령이 탄핵의 덫을 놓고 기다리는 게 아니냐" 라고 말하자 "그러면 그렇게 안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라고 말한 것. 이 질문에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 자체가 헌법 수호에 문제가 되므로 총선 유불리를 생각하지 않고 탄핵을 한다", "국민도 알아줄 거다" 라는 취지의 말을 어물거리며 말을 넘겼고 여기에 손석희는 "'글쎄요, 다른 분들도 그렇게 이해하실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관광 태우며 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그리고 탄핵은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었다. 도깨비뉴스의 분석기사.

한편으로 본인의 성향을 살짝 비춘 적도 있긴 한데, 2000년대 중반 노무현 대통령과의 특별담화 형식으로 진행된 100분 토론 특집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면전에서 좌우 대립 관련 이야기를 꺼내면서 "제 생각을 살짝 말씀드리자면 저는 참여정부를 별로 좌파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또 일부 보수 세력들이 '손석희도 좌빨이다' 라고 한동안 트집을 잡자, 100분 토론에서 "저에 대해서 한두 분이 말씀을 하시는데 분명히 말하는데 저는 중립, 굳이 따지자면 인본주의자(人本主義者)일 뿐" 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때 보수 쪽 출연자인 전원책 변호사가 농담식으로 "휴머니즘 자체가 바로 좌파의 시작"이라고 표현해서 관객석에서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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