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박형준(朴亨埈)
본관 밀양 박씨
출생 1960년 1월 19일 부산광역시 수영구 망미동
가족 배우자 조현, 슬하 1남 1녀
종교 무종교
학력
대일고등학교 (졸업 / 3회)
고려대학교 (사회학 / 학사·석사·박사)
병역
면제(부등시)
소속 정당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17
현직
동아대학교 사회학과,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플랫폼 자유와 공화 공동의장
경력
중앙일보 기자
제17대 국회의원(부산 수영)
한나라당 대변인
대통령실 홍보기획관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
대통령실 사회특별보좌관
동아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국회사무총장
새한국의 비전 원장
미래통합당 혁신통합추진위원장
미래통합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
대한민국의 前 정치인. 現 동아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자, 보수를 대표하는 논객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1960년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 망미동에서 태어났다. 서울 숭덕초등학교, 동국대사대부중, 대일고등학교 졸업.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문인이나 기자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1978년에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회학과에 입학하였다. "79년 10ㆍ26사건과 80년 광주를 거치면서 사회과학 이론에 빠져들기 시작해 좌파이론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다."# 졸업하고 잠시 중앙일보 기자 생활을 하다가, 모교로 돌아가 사회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군복무는 80년대 전두환 군부독재정권 수립 이후 민주화 학생운동에 참여해 시위를 하다 눈을 다쳐 근시, 부동시로 면제받았다.
80년대 후반 「창작과 비평」, 「현실과 과학」 등 진보적 학술지를 통해 일어났던 여러 사회과학 논쟁에 참여해 비교적 일찍 소장 논객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이 당시를 가리켜 박형준 본인은 "굳이 노선을 이야기하자면 사상적으로 온건계열의 PD(정파)에 가까운 시기"였다고 술회한다.
1991년 동아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그 무렵 정태인과 함께 진보언론의 종가였던 월간 <말>지의 편집위원을 잠깐 지내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 민중당 소속으로 이재오, 김문수, 차명진 등과 같이 정치활동을 시작했지만 민중당이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하고 해산되면서 말 그대로 물을 먹었다.
이후 정치노선을 바꿔서 김영삼 대통령의 정책자문기획위원으로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하였다. 이때 김문수, 이재오를 중심으로 민중당 지도부급 인사들 상당수가 "문민정부의 개혁을 지원하겠다"면서 김영삼 정부의 신한국당에 가담하였다. 김영삼 정부가 전두환, 노태우를 전격적으로 잡아넣는 등 과거 청산에 적극 나선 것도 이들의 선택에 명분이 되어주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수영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이명박 진영에 가담하여 친이계의 브레인으로 활약하면서, 친이계 내에서도 이재오계에 속하게 된다. 당시 이해찬 등 노무현 정권의 386인사를 강력 비판하며 친이계의 브레인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진보진영에서는 변절자로, 조갑제 등 극우보수진영에서는 좌경세력으로 동시에 욕을 많이 먹었다. 자신의 전향 이유에 대해서 '주사파의 교조주의, 전체주의적 사고에 염증을 느꼈다', '사회는 선의만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국정을 사회운동 하듯이 하면 망한다' 등의 발언을 하였다. 아무래도 진보 이념과 이상주의의 한계를 느끼고 마키아벨리적 현실주의 노선을 택했다고 봐야할 듯.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친박 무소속을 표방한 유재중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낙선 후 이명박 정권의 청와대에서 홍보기획관, 정무수석비서관, 대통령 사회특별보좌관을 지냈다. 친박계가 공천권을 장악한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하고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제29대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이때 자신의 지역구였던 부산 수영구에 다시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 후로 제3지대론, 빅텐트론 등을 주장하며 반기문 전 총장의 출마를 물밑에서 돕기도 하다가 결국 흐지부지되면서, 정계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썰전 202화에서 야인특집으로 정청래와 함께 출연했다. 17대 국회의원 시절 한나라당 언론발전특위 간사일 때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타협해서 참여정부의 4대 개혁 입법 중 하나인 신문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는데, 이로 인해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과 친박에게 엄청나게 찍혀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선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유시민 작가가 JTBC 인터뷰에서 좋은 토론상대였던 사람은 누구였냐는 질문에 유승민과 박형준을 꼽기도 했다. 그 덕분인지 2017년 6월 29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썰전에서 하차한 전원책 변호사의 후임으로, 새로운 보수 패널로서 출연이 확정되었다.
이후 박형준의 생각tv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정치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푸는 형식의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통합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어 범중도보수를 비롯해 야권의 통합에 힘쓰고 있다.
2020년 1월 21일 반나절 일정으로 제주특별자치도를 방문하였고 원희룡 지사에게 범중도보수신당 합류 동참을 요청하였고 결국 원 지사는 범중도보수신당 합류를 선언하였다.
2월 6일 중도·보수 야권 통합을 추진 하며 본인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혁신통합추진위원회(통추위)가 6일 통합신당준비위원회(통준위)를 출범하고 공동위원장 중 한명이 되었다.
이후 미래통합당이 출범하면서 미래통합당 혁신통합추진위원장이 되었다. 2020년 3월 9일 21대 총선 비례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미래한국당으로 당적을 옮기는가 싶었지만 2시간 만에 공천 신청을 취소하였다.
김종인 영입설이 파다하던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자리에 김종인 전 대표의 고사로 황교안 대표가 앉았고, 추가로 통합을 이끌었던 박형준 교수와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를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하여 삼두체재에 돌입했다. 박 교수는 공천 신청 후 번복 해프닝을 겪자마자 다시 큰 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동관, 임태희와 더불어 그야말로 이명박 대통령 시절, MB키즈라고 불리며 대통령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그보다 더 사랑을 받았다고 평가되는 사람은 이명박의 정치입문 이전부터 가신으로 활동한, 진정한 이명박의 집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김백준밖에 없다.
남경필과 사적인 친분이 있다.
썰전 238화에서 말하길 남경필의 장남이 마약 투약으로 체포된 후 속상한 마음에 문자 메시지로 "형, 가슴에 비가 내려요"라는 말을 했다고. 2017년 광역서울도 토론회에서 서로 옆자리에 앉아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찍히기도 했다.
유시민과 매우 가까운 사이인 걸로 알려져있다. 서로 국회의 같은 축구팀에서 뛴 적도 있고 같은 나이에 동세대를 지낸 정치인이기도 하고. 유시민은 JTBC 뉴스현장에서 토론 상대로 누가 좋냐는 사회자의 질문을 들었을 때 유승민과 함께 박형준을 언급했는데, 그것은 곧 박형준을 합리적인 보수로서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 최근 박형준이 썰전에서 자신의 하차요청글이 빗발치고 있다며 하소연할 때 적극적으로 위로해 준 것도 유시민이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박형준을 제작진에게 적극추천한 것도 유시민이라고.
토론 능력에서 그 유시민도 몇 안 되게 인정한 인물이 박형준 본인과 유승민이고, 본인도 뛰어난 토론 능력으로 유명하나, 100분 토론 당시 故 노회찬의 공격에는 잠시 쩔쩔맨 적이 있었다.
썰전 226화에서 유시민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구라도 유시민더러 한 방 먹었다며 엄청 웃었다. 227화에서 김구라가 유시민에게 주변 반응이 어땠냐고 묻자 유시민이 말하길 그동안 매너리즘에 빠졌던 걸 반성하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썰전 244화에서 밝히길 국민의당에 합류할까 라는 생각을 적극적으로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제3지대론'을 추진할 당시 우리 정치가 양극화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봐서 중도에서 합리적 진보와 보수가 만나는 틀을 구상해서 실행하려고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잘 안됐다고 밝혔다. 이를 듣고 게스트로 온 박지원 의원이 그때 그 선택(국민의당에 안 온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말해 빵 터트렸다.
2006년 보좌관이 사행성 게임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았다가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박형준은 검찰 조사가 시작된 후 해당 보좌관을 해임했으며, 이후 검찰은 박형준과는 관련성이 없다고 발표했다.
현재 보수의 주류인 자유한국당과 괴리가 있는 주장을 많이 하며 자유한국당에 비판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 탓에 보수에서 박형준의 평가는 상당히 악화된 상태. 때문에 과거 보수의 선두였지만 이후 보수와 간극이 발생한 전여옥과 비슷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진보진영의 정치인들하고 가까운 사람들이 많은데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정청래다. 정청래의 정치성향을 보자면 어색해 보이는 조합이지만 정청래가 박형준과 함께 썰전에 출연했을 당시 말한 바에 의하면 함께 일했을 때 헤매고 어려웠던 부분을 박형준이 많이 도와주었고 자신이 의견을 다소 과격하게 피력할 때에도 매우 합리적인 의논을 할 수 있었다고. 둘 다 성향이 성향이다보니 부딪힐 때도 많지만 정청래는 늘 박형준을 얘기할 때 존경스럽다며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빼먹지 않는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시절 정청래의 보좌관과 함께 게임산업 관련 협회 비용으로 지난해 9월 미국에서 열린 게임 행사에 다녀와서 논란이 되었다. 문제는 해당 9월에 게임산업개발원의 상품권업체 인증제 취소 후 재지정이 논의되고 있었기에 의혹이 제기된 것. 이에 본인은 "1억원 협찬은 대행사가 전적으로 담당했다"면서 "본인은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자신도 과거엔 좌파였다고 밝혔다.## 5공 때 엄청난 탄압 속에 젊은 지식인들은 쉽게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 모택동주의에 빠져들었고, 박형준 본인 또한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해갔다고 한다. 다만 애초부터 박형준 본인은 교조주의적 태도와는 거리를 두었고, 88년 유럽에 체류하며 동유럽체제 문제점을 보면서 마르크스주의는 더 이상 희망의 원리가 될 수 없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후 해당 과거가 재조명되면서 과거 주사파였던 하태경과 비슷하게 자유한국당을 비난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실제로 하태경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했고...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캠프 대변인이었기 때문에 당시 박근혜 캠프 단장이었던 유승민과는 한때 정치적 대립 관계였다. 하지만 썰전에서 말하길 창과 방패 같은 관계(유승민이 창, 박형준이 방패)였다고 하며, 유세가 끝나고 서로 회식 자리에 함께해서 덕담을 건넬 정도로 개인적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박형준이 친박 때문에 정계에서 은퇴하고 유승민도 비박계가 된 지금은 서로 협력하며 원만하게 지내는 듯. 다만 박형준은 자신이 국회사무총장 시절 많이 도와줬는데 유승민은 그걸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살짝 디스(?) 하기도 했다. 유승민이 2017년 바른정당에서 개강한 지방선거학교 강연에 박형준을 초청하기도 했다.
263화에서 박형준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정치보복이라고 비판하며, 언제까지 이런 방식을 계속 할 수 있겠느냐, '덕이 미움을 이긴다.' 라고 국민통합으로 '미움의 정치'를 넘어서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에 유시민은 동의하면서도 통합이라는 미명하에 과거의 불의를 덮으면 과연 통합이 될 지라는 딜레마가 있다고 반박했다. 박형준은 덮자는게 아니라고 했는데 이와 관련해서 논란이 일어났다.
썰전 255화에서 MB정부의 노무현 수사에 대해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 과정에 정치보복적 성격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당시 MB 청와대 내에서도 신중한 수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었고 MB도 구속 기소에는 부정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관련해서 같인 친이계 출신이지만 정두언의 주장은 맥락이 조금 다른데 이명박이 구속 기소에 부정적이었지만 어차피 재판에서 실형인데 구속시키면 이명박 본인이 구속을 주도한 것으로 돼 정치적 부담을 느낀 것이라고 한다.
이 두 주장은 다른 맥락이지만 양립도 가능하다. 당시 청와대가 노 전 대통령 구속 건에 대해 신중론과 정치적 부담 등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구속수사에 회의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2009년 행정구역 개편 논의가 무르익을 당시(청와대 정무수석 재직)에 광명시, 구리시의 서울편입 논의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력하기도 했다. 기사
동아대 대학원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강의의 충실도와 깊이가 남다르다고 한다. '동아대 교수로 계시기엔 아깝다'라는 다소 셀프디스스런 코멘트를 하는 동아대 학생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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