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강동원 (姜棟元)
본관 진주 강씨
출생 1981년 1월 18일 부산광역시
신체 186cm, 72kg, B형
학력
남양초등학교
경원중학교
거창고등학교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기계공학과 학사
상명대학교 대학원 영화전공 석사수료
데뷔 2003년 MBC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
가족 외증조부 이종만 아버지 강철우, 어머니, 누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
취미 음악감상, 가구 만들기, 웹서핑, 운동
특기 축구
종교 무종교(무신론)
뛰어난 외모와 훤칠한 키 길쭉길쭉한 기럭지 그리고 괜찮은 연기력으로 무장한 배우다. 기존의 미남 배우들인 장동건, 정우성, 고수와는 다른 곱상한 꽃미남상이며 2000년대 이래로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는 '예쁜 남자' 신드롬의 주역. 패션 모델 출신이며 무려 9등신에 달하는 비율을 가지고 있다. 한쪽 눈은 무쌍, 다른 쪽은 연한 속쌍꺼풀을 가지고 있다. 각각 풍기는 분위기가 달라 이런 짝눈이 매력이자 연기적 장점이며 높게 솟은 콧날이 마치 직각삼각형을 얹어놓은 것처럼 인상적이다.
전형적인 배우의 루트를 거치지 않았고 데뷔 초기에 보여준 다소 어색한 연기로 인해 배우로 인정받기 어려워 보였으나 배우로서의 목적 의식을 갖고 묵묵히 노력한 덕분인지 이제는 대중들에게 연기력 또한 인정받아 가는 추세. 특히 꾸준한 작품 활동이 큰 인정을 받고있다.
일부 인기 영화배우들이 신비주의로 인해 대박 영화 한 두 편 찍고 나면 몇 년씩 쉬면서 CF만 찍는 반면, 강동원의 경우 매년 한 두편씩 꾸준히 영화를 찍고 다양한 배역을 맡으려는 노력을 보여주기에 그런 부분에서 평가가 높다.
유난히 독특한 배역, 어쩌면 도박성인 배역들에 매력을 느끼는 듯 한 명의 배우가 소화하기 어려울 법 하다 싶을 정도로 다양한 역들을 맡았는데 이들이 모두 흥행에 성공해 '강동원이 곧 장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본인은 배역이 겹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맡은 배역은 다른 배우가 절대로 대체할 수 없을 것 같은 독보적인 연기적 존재감을 자랑한다. 표정 연기 또한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직까지 강동원의 연기력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는 편이다. 목소리 자체는 괜찮은데 경상도 출신으로 연기할 때 사투리 억양이 배어있다는 비판이 있다. 또 사극이나 시대극에서는 발성 자체가 부족한 면을 모인다. 또한 그의 작품을 본 대중들의 반응이 연기보다는 주로 그의 얼굴과 피지컬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씁쓸한 사실 역시 존재한다.
나름 꾸준히 필모를 쌓아가는 점에서 연기에 대한 욕심은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계에서의 높은 입지와 타율이 괜찮은 필모그래피 및 스타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치에 비해서 수상 경력은 빈약한 편이다. 데뷔 초에 신인상과 인기상을 여러 개 받은 이후 2010년 제30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의형제》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2016년 인터뷰에서는 '향후 5년이 자신의 연기인생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말했고 YG로 이적한 이유가 '열악한 영화 환경에 대한 싫증과 한국 영화의 세계화, 아시아 시장에 대한 겨냥' 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이 배우의 행보에 더 기대를 갖고 눈여겨 볼 만하다.
영화계에서는 '강동원은 이미 브랜드나 마찬가지다'라는 말까지 있다고 한다. 일단 강동원이 출연하면 못해도 본전은 뽑는다고 한다.
중학교 때는 전교 2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굉장히 잘했었다. 아버지의 말씀에 따르면, 어릴 적 별명은 '오골계'였다고 한다. 출처 어렸을 적엔 지금처럼 잘생기지도 않았고, 밖에서 뛰어노는 것을 좋아해서 까맣게 그을렸기에 그런 별명이 생겼다고 한다.
자율학교인 거창고를 입학고사에서 200점 만점에 192점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받고 입학한다. (단 강동원이 입학할 당시엔 자율학교가 없었다. 그때엔 그냥 지역 명문고) 고등학교 입학 후 어릴 적 부모님에 의해 좋아했던 축구를 포기하게 된 것이 한이 됐었는지 축구부에 합류할 기회를 잡자 제대로 활약하게 되면서 학업에 소홀했다고 한다. 이 당시 반항심에 거의 백지로 시험지를 내다시피 한 적이 있는데 전교 200명 중 198등을 한 적도 있다고. 고3때, 부모님의 기대를 거스르기 어렵다는 생각에 독하게 공부를 다시 시작해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기계공학과에 특차로 입학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공계 쪽에 재능을 보였고 본인은 수와 셈에 능해 당연스럽게 기계공학과로 진로를 정하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강동원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이과에 온 문과생'.
강동원에겐 대학시절이 썩 유쾌한 기억으로 남은 것 같진 않다. 이래저래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모델시절 함께했던 지인 배정남이 방송에서 했던 말로 보면 모델생활 중에도 학비를 벌기위해 골프연습장에서 골프공 줍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힘든 생활을 한적도 있다고 한다. 따뜻한 사람인데 당시 아르바이트하면서 많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2학년때 지하철에서 캐스팅 돼 모델계에 입문했다. 빼놓을 수 없는 얘기로, 모델계에서도 꽤나 알아주는 탑모델이었다. 모델일때도 다리길이가 유명했는데, 강동원은 키가 186cm이지만 다리길이는 112cm로, 키 190cm의 모델들의 다리길이와 비슷했다고 한다.
한국 모델 최초로 파리 프레타 포르테에 섰고 프라다 런웨이에 초청받기도 했으나 거절했다
본인의 연기 겸 드라마 데뷔작은 2003년 3월부터 방영한 MBC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 다음으로는 2003년 7월부터 방영한 드라마 《1%의 어떤 것》으로 싸가지 없으면서도 잔정 있는 꽃미남 재벌 2세로 출연하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2004년 1월에 개봉한 《그녀를 믿지 마세요》가 영화 데뷔작이다.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구수한 목소리와 김하늘과 치고받는 억척스러운 억양이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2004년 7월에 개봉한 《늑대의 유혹》에서 정태성 역을 맡았다. 여기서 제대로 꽃미남 이미지로 꽂혔고 강동원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작품. 이 영화에서 강동원이 우산 들어주는 장면은 한국 영화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심쿵' 장면으로 남았으며 이후 많은 매체에서 패러디되고 있다. 강동원 본인은 우스갯소리로 이 광경을 극장에서 직접 목격하지 못해서 아쉽다고 언급했다. 본인은 이 당시, 신인으로서 얻은 폭발적인 인기에 '이 영화에서 얻은 인기가 얼마나 갈까'라는 회의감에 젖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고 오히려 부담이 됐다고 밝혔다.
강동원 사주, 프리미엄 운세
총평
눈물이 많고 얌전하고 온순한 성품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지만 참을성이 부족하고 의지가 흔들려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결단력과 추진력이 미약한 것이 흠입니다.
매사에 하고자 하는 의욕으로 고군분투하면서 노력을 기울이지만 중도좌절되는 수가 많은 운세입니다. 투기나 모험보다는 안정성 있고 현실적인 사업을 해야 유리하고 차라리 직장생활을하는 것이 운세에 적합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을 이룩함므로 의식주의 걱정은 없으나 투자나 금전거래에 있어서는 냉정을 잃어서는 않됩니다.
열성적이고 노골적이지만 욕망이 강하여 때론 행동을 과장하여 주위로 부터 오만하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쾌활한 성격이며 정열과 적극성이 있어 주위를 설득하는 힘이 뛰어납니다.
초년운
일찍 부모 곁을 떠나 유학을 가거나 비교적 어린 나이에 움직임이 큰 편입니다.
관찰하는 능력이 뛰어나 친구보다 일찍 눈을 떠서 상위권의 실력이 없더라도 스스로 학업에대한 의지를 불태우게 됩니다.
혼자 일을 해결하려는 자립정신이 강해지고 냉정과 이성을 바탕으로 모든 일에 대해 직접 확인하고자 하는 완벽주의적인 면이 생겨나겠습니다.
남달리 승부욕도 없지만 남몰래 해보고 싶은 일은 많아 호기심을 통해 이것 저것 다양한 분야를 탐색하고자 합니다.
성장하면서 남보다 한 발짝 앞선 자수성가의 의식을 발휘하여 독립하기를 좋아하고 개성을 중시하여 타협을 하지 않으며 남보다 일찍 성장하기 위해 앞당겨 일을 벌리고자 합니다. 세상사를 일찍 경험하고 대처하는 수완이 생기겠습니다.
좌절하는 것도 빠르지만 다시 도전하는 의욕적인 면도 강하게 나타나므로 쉽게 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유파입니다.
중년운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쁜 성격이라서 부지런하고 매사에 적극적인데도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집념이 약하여 중도에서 다른 일로 바꾸는 경우가 많습니다. 머리가 잘 회전되어 오늘보다는 내일을 향한 좋은 방안을 모색하며 꾸준히 준비하는 정신과 함께 닥치는 일은 즉석에서 배우고 깨치고자 하는 열의를 중심으로 다양한 일에 대한 대비와 준비를 하게 됩니다. 하는 일에 쉽게 만족하지 않는 숨은 웅지 때문에 직장을 더러 옮기는 일도 있겠지만 중년의 후반에 성공이 기다리고 있으니 초반의 고생은 이러한 성공의 밑거름이 되어 줍니다. 사람을 사귀는 일에 빠르며 적극성이 엿보이니 여러사람과 협력하니 결국 시련조차 장애가 되지 못합니다.
가정이 원만하지만 일의 바쁨으로 때로는 떨어져 있는 시간도 있겠지만 각기 제 할 바는 하는 모범적인 생활로 융화해 갑니다. 뭔가를 꼭 이룩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안해 중년의후반기로 접어들어 성공과 함께 안정을 찾게 됩니다.
말년운
출입이 무쌍하니 막히는 데가 없습니다. 가업을 지키거나 집안에 있으면 불길하고 나가면 재물이 생기는 수이니 무역이나 장사를 하면 돈을 물같이 쓰게 됩니다.
젊어서의 고생은 말년에 돌려받게 되니 이 시기에는 전화위복이라는 말을 실감할만 합니다. 타국 드나들기를 이웃처럼 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되니 노년의 청춘입니다.
말년 운이 대세지행이니 그 권도가 미치지 않음이 없습니다. 뭐든지 하기로 작정하고 덤비면 되지 않는 일이 없으니 동서양이 감탄합니다.
천지가 감응하여 매사가 성사하니 인생을 혼자라 할 수 없습니다. 일마다 이룩됨에는 수많은 인간의 원력과 능력의 인연소치임을 알고 자신의 재간으로 저들에게 기쁨을 주고 저들과 더불어 공존됨을 알아 처세하니 그 명성이 날로 더 높아만 갑니다.
인생이란 필요불가결한 만남의 연속입니다. 만나야 할 사람이나 만나서는 안되는 사람도 운명적으로 만나며 기쁘고 괴롭움을 고수해야 합니다.
내가 이룰 수 있는 일은 인간마다의 필요에 의함이어야 하니 내 성공이 곧 모든 이의 여건이었음을 알고 그 댓가가 모두의 이익과 결부됨이니 딸린 식솔이 친족만이 아님을 말합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한 단체의 장(長)을 맡게 된다 할 수 있겠습니다.
2017년 3월 5일 강동원 본인의 공식 입장이 발표되었다.
- 강동원 공식입장 전문 -
안녕하십니까. 강동원입니다. 먼저 외증조부와 관련해 물의를 일으킨 점 고개 숙여 깊이 사과드립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외증조부의 미담을 들으며 자라왔습니다. 외할머니가 독립유공자의 자손이셨기 때문에 외증조부에 대한 미담을 자연스레 받아들여왔고, 2007년 인터뷰를 한 시점에는 그 분의 잘못된 행동들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었습니다.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립니다.
이번 일이 혼란스러웠고, 충격도 컸습니다. 더욱이 가족사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야했고, 또 관련된 자료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온 미숙한 대응과 관련해 관련자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아울러 빠르게 제 입장을 전해드리지 못한 점도 모두 사과드립니다.
저 또한 배우이기에 앞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하고 다시는 그런 부끄러운 일이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일에 대해 진심으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점, 미숙한 대응으로 논란을 일으킨 점, 빠른 시간 내 제 입장을 말씀드리지 못한 점, 모두 저의 잘못이라 통감합니다. 저는 제 외증조부의 부끄러운 과거를 알게되었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역사에 대해 더욱 공부하고 또 반성해나가겠습니다. 아울러 미약하게나마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이번 일로 심려 끼쳐드린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금수저 배우로 알려져 있어 데뷔전 부유한 삶을 누렸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데뷔 당시 인터뷰에 의하면 어릴 적 집안 환경은 넉넉지 않았으며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일반 사원에서 시작해 강동원이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부사장까지 올라간 신화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어 금수저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강동원의 인터뷰와 부친 강철우의 프로필에 따르면 강동원의 부친은 중견기업 대선조선, 대기업 기아중공업의 평사원으로 근무하다 IMF 때 실직하여 중소기업인 부산산업기계로 이직하였다. 그리고 중견기업 SPP조선과 합병하고 8년 뒤 부사장으로 고속 승진했다고 한다. 이는 강동원이 배우로 데뷔하고 5년 후의 일이다. SPP조선은 2017년에 폐업했다.
2008년, 선박왕을 소재로 한 드라마 <내 여자> 측에서 드라마를 홍보하기 위해 <내 여자>의 주요 촬영지인 SPP 조선의 부사장이 강동원의 아버지라는 것을 기사화하며 강동원이 금수저라는 보도가 처음 나오게 되었다. 강동원 측에서는 여러번 사실이 아니라고 입장을 밝혔지만 이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2017년 외증조부 친일파 논란으로 인해 금수저라는 오해가 더욱 굳어지게 되었다.
아래의 인터뷰를 보면 강동원은 어린시절부터 금수저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어린시절 일화
당시 부모님은 맞벌이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아버지는 조선소에서 근무하셨는데 집안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다. 일터에 나가셨던 어머니는 동네 아주머니의 연락을 받고 병원에 달려오셨고, 나는 수십바늘을 꿰매는 치료를 받은 끝에 손가락을 잃을 뻔한 위기를 넘겼다. 지금도 내 손가락에는 낫에 베인 흉터가 남아 있다.
어렸을 때 유치원에 공짜로 다니는 행운을 얻었다. 박봉의 샐러리맨이었던 아버지는 내 유치원 등록금까지 지원해줄 사정이 안됐다. 누나만 유치원에 정식으로 다녔다. 머리가 커 누나와 ‘맞먹기’ 전만 해도 난 누나의 뒤를 병아리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순한 동생이었다. 누나가 유치원에 가면 집에 혼자 있어야 했기 때문에 날마다 유치원에 쫓아갔다. 그런 나를 보고 당리유치원의 정옥주 선생님이 유치원에 무료로 다니도록 배려해주셨다. 그 덕분에 난 유치원 졸업장도 갖게 됐다.
----중학생 때 일화
그날의 내 옷차림은 이랬다. 초등학교 때부터 입던 추리닝(트레이닝)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대부분이 청바지를 입고 맵시를 뽐내고 있는데 나만 뒤떨어져있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날 반 대표로 장기자랑대회의 사회를 봤다.
수십명의 친구들 앞에서 추리닝 차림으로 서 있으려니 솔직히 창피했다. 추리닝 패션이 10년 후인 현재 이렇게 유행할 줄 알았으면 ‘패션의 선구자’인 척 자랑을 할 걸 그랬다(^ ^). 당시 난 옷이라곤 추리닝 두벌밖에 없었다. 그것을 갈아입으며 살았고, 별로 불만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소풍 날 옷 때문에 빚어진 아픈 기억으로 ‘(옷)브랜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소풍 갔다온 뒤 철딱서니 없이 엄마한테 옷을 갖고 한바탕 투정을 부렸던 모양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소풍을 앞둔 어느날 내 방안에 곱게 포장된 옷 한벌이 놓여있었다. 비싼 니트 상의였다. 돈도 없었을 텐데 엄마가 왜 그랬는지. 가슴이 찡해 한동안 말을 잃었다. 난 그 옷이 닳도록 고등학교 때까지 입었다.
----대학생 때 일화
1학년 겨울방학 때 서울 이모부 집에 기거하며 골프연습장에서 고된 아르바이트를 했다.
좌우명은 공자의 명언인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뜻으로, 데뷔 이후 변함없는 좌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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