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RAIN
본명 정지훈 (鄭智薰)
출생 1982년 6월 25일 충청남도 서산시
신체 185cm, O형
가족 아버지, 1남 1녀 중 첫째
배우자 김태희(2017년 결혼 - 현재)
자녀
장녀(2017년생)
차녀(2019년 9월 19일생)
종교 무종교 → 가톨릭 (세례명: 미카엘)
학력
서울창서초등학교 (졸업)
숭문중학교 (졸업)
안양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 졸업)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음악학 / 학사)
경희대학교 ( 퍼포밍아트학 / 중퇴 )
단국대학교 (공연예술학 / 석사 )
소속사 레인컴퍼니
데뷔 1998년 그룹 팬클럽 1집 〈FANCLUB〉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배우. 대중들에겐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본명이 정지훈으로 예명은 비이다. 의미는 비처럼 모든 사람들 곁에 내리고 싶다는 의미이다. 한국 활동만 할 당시에도 연기활동을 제외하면 본명을 쓰지 않았고 해외에 진출하게 된 뒤론 'RAIN'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1998년 6인조 그룹 '팬클럽'의 멤버로 데뷔했으나, 제대로 된 활동을 못 하고 1999년에 나온 2집을 끝으로 팬클럽이 해체하며 깨끗하게 묻혔다. 딱히 눈에 띄는 활동을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2집까지 나왔다.
이후에도 가수의 꿈을 품고 안양예고를 다녔으나 극심한 가난에 병원비를 못 대서 결국 모친상을 당하는 매우 힘든 나날을 보냈다. 비는 이 일화를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이야기한 바가 있다. 그러던 중 박진영의 눈에 띄어 JYP에 연습생으로 들어간다. 박진영이 후에 밝힌 캐스팅 이유는 비에게서 절박함이 보였다고. 무반주로 춤을 몇 시간씩 춰보라는 말도 안되는 요구도 당장 해낼 만큼 절박함이 보였다고 한다. 그 예로 돈이 없어서 우유에 불린 라면으로 삼시세끼를 때우거나 옷 살 돈이 없어 땀에 절은 트레이닝 복을 한달내내 입고 다닌 일화는 유명하다. 이 때의 기억 때문인지 아직도 자신에게 밥을 사주는 사람을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이른바 자수성가의 아이콘 중 한 명이라고 볼 수 있고, 나중에 그가 메인 MC를 맡는 더 유닛의 제목같이 리부팅된 사례이기도 하다.
박지윤 등의 백댄서로 활동하며 무대 감각을 익혀 온 그는 2002년 "나쁜 남자"로 솔로 데뷔를 하며 가요계에 복귀했다. 이후 승승장구해 JYP 사단의 초창기 멤버 중 god와 함께 가장 성공한 인물이 되었으며 그 후 박진영과 결별, 2008년 제이튠엔터 설립으로 독자 활동에 나섰다. 그러나 군대에 입대하면서 제이튠엔터를 떠났고 2011년 제이튠엔터는 박진영이 인수하여 JYP로 사명이 변경되었다. 2013년 초까지 비의 소속사는 레이니엔터테인먼트였다. 그러다가 2013년 5월, 큐브엔터테인먼트와 계약했다. 2015년 9월 큐브와 계약이 만료된 후에는 1인 기획사인 레인컴퍼니를 설립해서 활동하고 있다.
2002년 상반기에 타이틀곡 '나쁜 남자'를 통해 솔로로 가수 데뷔를 했고 나름대로 주목할 만한 신인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당시 가요계가 2002 FIFA 월드컵에 대국민적인 관심이 쏠린 시기라서 YB 빼고는 가요계가 침체되어 있던 상황이라 전대의 가수들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기대보다 반향이 없자 회사에서는 음반 활동을 접자고 했지만 비가 귀여운 이미지의 후속곡 '안녕이란 말 대신'으로 조금 더 활동해 보자고 강력하게 주장하여 후속곡 활동을 하게 된다.
결국 월드컵이 끝난 하반기에는 안녕이란 말 대신으로 인기를 끌며 당시의 대중들에게 기억될 만한 성적으로 1집 활동을 마무리했다. 이 곡으로 공중파 방송인 SBS 인기가요에서 한 번뿐이지만 어쨌든 1위도 하게 되고 특유의 미소로 CF도 많이 찍으며 인지도도 높였으니, 비의 주장이 빛을 본 셈. 결국엔 SBS 가요대전과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주목할 만한 신인으로 부상하게 된다.
무엇보다 비가 폭넓은 인지도를 얻기 시작한 것은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부터이다. 한동안은 "저 듣보는 누구냐?"라는 평을 들었으나 천생연분에서 화려한 댄스 실력을 선보인 것이 화제가 되었고 건강한 몸을 바탕으로 각종 신체 대결 게임들에서 타 남자 연예인들을 압도하며 점차 주목을 받았다. 이 당시 지나친 겹치기 출연으로 팬들에게는 "JYP 먹여 살리는 소년가장"이란 말을 듣기도 하였다. 비가 예능으로 얻은 인기와 인지도가 상당한 만큼 비의 예능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보통 짬이 차면 예능은 안 돌고 신비주의 이미지로 가는 연예인이 많은데 비는 신인 때와 마찬가지로 활동 시작하면 예능을 많이 도는 편이다.
이렇게 인지도를 쌓아가던 비가 결정적으로 탑스타로 자리매김한 것은 2003년 KBS의 드라마인 '상두야 학교 가자!'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부터. 또한 그 뒤에 발표한 2집의 타이틀 곡인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 빅히트를 치게 되었다. 그 후 드라마 '풀 하우스'가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권에서 대박이 터지면서 명실상부한 탑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성공했다는 자수성가형 스토리, 국위선양을 유달리 좋아하는 한국인의 정서, 드라마 '풀 하우스'의 후광효과(내용 중 탑스타로 등장한다) 등이 맞물리며 당대의 각종 CF를 휩쓰는 등의 결과를 보여준다.
몇몇 사람들은 이 시기에 가수로서의 이미지는 희박해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게릴라 콘서트에 도전했다가 참패하기도 했다고 알고 있으나 상두야 학교 가자는 2003년 10월 방송을 시작했고, 게릴라 콘서트는 2003년 1월에 방영되었으니 아직 배우 활동을 시작하기 전이므로 듣보 연예인이었을 수는 있어도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배우의 이미지보다 약하던 시기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풀하우스 이후 나온 3집 It's raining으로 한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에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비는 3집 활동으로 2004년 가요대상을 석권했고 동시에 3집은 아시아 밀리언셀러로 등극했다. 특히 박진영 작사 작곡의 타이틀 곡 It's raining은 '습-하' 하는 특유의 호흡소리 파트, 강렬한 비트와 댄스의 임팩트로 비 자체를 상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곡이 되었다. 신화의 Brand New, 이수영의 휠릴리, 김종국의 한 남자와 함께 2004년 가요계를 평정한 최고 인기곡이었으며 2010년대에도 비가 시상식에서 레퍼토리로 써먹을 정도.
그리고 비는 한류열풍과 '풀 하우스' 의 인기를 등에 업고 해외로 진출, Rain이라는 이름으로 아시아권 투어를 비롯 미국에서도 활동하였기에 한국이 배출한 제1세대 월드스타라고 언론에 의해 포장되지만 자기 홍보를 크게 한 언론플레이에 불과하다는 평이 많았다. 이런 평은 초창기엔 극히 호감형이었던 비의 이미지를 깎아먹는 족쇄로 작용하는 결과로 후일 이어진다.
그러나 당시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장나라나 안재욱, 일본의 BoA나 배용준 등이 매우 커다란 인기에도 불구하고 그 인기가 특정국에 한정되었던 특징이 있는 반면 비의 경우 아시아권에서 폭 넓은 인기를 끎으로써 기존의 한류 스타들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였던 것은 주목할 만하다. 3집 'It's raining'의 음반판매량과 이어지는 콘서트 투어가 그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아시아 전역에서 100만장 이상을 팔았고 아시아 여러 도시의 콘서트는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 인기는 대개 아시아권에 한정된 것으로 국내 언론에서 다루어진 서구권에서의 인기는 대부분 거품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미국에 진출한 이후 유명 방송 토크쇼에도 출연하고 영화에도 출연하였으나 정작 미국에 가서 Rain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두 유 노 레인? 대부분 모르고 그가 부른 노래와 제목은 더더욱 모른다. 비가 2006년 "타임지에서 뽑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한국 연예인 최초로 선정되던 시기가 이런 월드스타 이미지 마케팅이 국내에서 극도에 달했던 시점. 외국 배우들에게 한국인 기자들이 하도 아냐고 물어본 통에 "유명한 거로 유명한 사람"이란 꼬리표가 생겨났다.
미국 공연이 무산되면서 사실상 가수로서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구권에서 가수로서의 인지도는 거의 없었고, 그나마 지켜본 평론가들로부터는 미국 트랜드에 몇 년 정도 뒤쳐진 촌스러운 음악이란 평을 들었다. 영화 스피드 레이서에서는 동양인 단역 정도로 인지가 되었으나 닌자 어새신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면서 헐리우드 배우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정도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 해외투어로 형성한 월드스타 이미지는 국내에서는 대단히 효과적이었고 비가 이효리와 더불어 가요계 솔로 최고의 위치였던 것도 사실이다. 이후에 음반을 들고 복귀할 때마다 공중파 특집방송이 잡혔으며 비의 무릎팍도사 출연으로 인해 라디오스타 방송분이 5분으로 단축된 사건은 매우 유명하다. 월드스타 이미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며 이 이미지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세계적 히트 전까지는 유효했다. 최소한 군 복무 이전 2010년대 초반까지 비는 거품설이 제기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방송가에서 슈퍼스타 대우를 받았고 국민적 인식도 그러했다. 그러므로 박진영이 의도한 월드스타 브랜딩 전략은 서구에서의 실체는 없더라도 국내와 아시아 한정으로는 대단히 잘 먹혔다고 볼 수 있다.
박찬욱 감독과 같이 찍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되면서 헐리웃 관계자들 눈에 들어오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피드 레이서에서 "태조 토고 칸"이란 국적 불명의 이름을 가진 일본인 가장과 중국인 여동생을 둔 가정의 장남으로 출연한다. 몽골계와 일본계 이름이 혼합된 토고 칸이란 이름에 억지로 태조라는 단어를 넣은 것인데 이를 가지고 한국을 홍보했다는 발언드립을 하였다. 테조로 안 들리면 다행이겠다.
하지만 제작팀의 인터뷰에 따르면 원작이 일본 만화다 보니 시나리오상에서의 토고 칸은 일본인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토고 칸의 아버지인 체트야는 일본인 배우와 일본풍 테마로, 여동생인 토고 호루코는 중국인 배우와 중국풍 테마로 유지되었다.
영화 출연으로 한국을 홍보했다는 마케팅을 하고 싶었다면, 제작진의 합의로 토코 칸 가家의 정확한 국적은 언급되지 않게 된 김에 테마도 한국풍으로 해달라는 식의 협상이 필요했던 부분이다. 뭐 이런 것 자체가 비가 월드스타 이미지로 재미를 보던 시절에나 먹혔을 철 지난 국수주의적 마케팅이긴 하지만 말이다. 참고로 토고 칸은 동양계 미국인, 즉 미국 국적을 가진 미국인이다.
스피드 레이서는 감독인 워쇼스키 자매의 명성과 헐리웃 메이저 영화라는 사실 때문에 미국과 국내에서 대규모의 홍보가 이루어졌으나 예상과는 달리 해외와 국내 모두 흥행에 실패하였다. 단, 제작진이 비의 아시아권에서의 인기를 이용하려고 나쁘지 않은 대접을 해주었던 것은 사실이며 결과적으로 제작 당시 좋은 인상을 워쇼스키에게 남겨 차기작 닌자 어새신 출연으로까지 이어졌으니 정지훈 개인에겐 완전히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스피드 레이서 출연으로 비는 언론으로부터 월드스타라는 타이틀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했으나 실질적으로 미국에서의 인지도는 한국에서 부여한 타이틀에 미치지 못했다.
스피드 레이서의 참패 이후 촬영한 닌자 어새신이 미국내에선 유명한 와패니즈 B급 영화의 대명사인 아메리칸 닌자의 후속작으로 받아들여지며 드디어 의미 있는 인지도를 확보하게 된다. 고어물, 액션물 매니아를 중심으로 호평 받고 있어 중박쯤은 노려볼 만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해외에선 개봉 3위로 시작해서 다음주에 6위로 하락하고 그 다음주엔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으며 국내에서는 2012에 밀렸다.
애초 워쇼스키 남매는 닌자 어새신의 흥행여부를 보아 닌자 어새신 2를 제작하려는 계획이 있었다고 하나 미국 내 흥행이 그에 미치지 못하면서 이루어지지 못했다.제작비에 비해 흥행이 기대치에 못 미친 근본적인 이유는 닌자 어새신 영화 자체의 품질이 싸구려 킬링 타임 영화 급이었기 때문이다. 워쇼스키 남매 자체가 매트릭스 이후 감독이나 제작자로서의 역량이나 커리어가 시원찮았다. 닌자 어새신의 영화 평점도 로튼토마토 26%, 메타크리틱 34점으로 범작 ~ 졸작 수준의 스코어이며 장르물 매니아 관객의 호응은 어느 정도 있었지만 평론가에게는 혹평받은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닌자 어새신은 비가 미국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의 단독 주연을 맡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며 비의 월드스타 타이틀의 가장 큰 근거이기도 하다. 종래 헐리웃 영화계가 동양인 배우에게 부여하던 전형적인 캐릭터인 "동양적인 무술을 하는 액션 위주의 캐릭터"라는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긴 힘들겠지만 그걸 뛰어넘은 다른 동양 배우가 누구냐고 물으면 딱히 손꼽기도 힘들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대단하긴 한 일. 이연걸이나 주윤발 같은 중화권 탑배우도 헐리우드에선 원패턴 동양인 무술 달인 캐릭터로 소모적으로 활용되는 마당이니 말이다. 그나마 몇년 전 부터는 아시아 배우나 아시안계 미국인 배우들도 '전형적인 아시안 배역'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배역들을 맡고 주연자리를 차지하는 추세에 있다.
닌자 어새신은 종영 후 미국과 북미, 그리고 기타 40개국에서 DVD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최종집계 금액으로는 제작비를 넘겨 두 배 이상의 수익을 영화사에 남겼다. # #
하지만 헐리우드 영화산업의 손익분기점은 보통 총투자금액의 2배로 잡는 것이 업계의 상식이다. 입장권 수익의 절반 정도가 영화관의 몫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영화관의 몫을 뺀 나머지 수익을 배급사, 제작사, 투자자 등이 나누어 가지므로 보통 제작비의 3배 정도 성과를 올려야 수익을 남긴 영화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게 된다. 반면 닌자 어새신의 경우 기대 이하의 극장 개봉수익에 DVD 판매량 등의 2차 수익을 겨우 합쳐서야 4천만 달러 제작비의 본전치기를 할 수 있었던 것.
닌자 어새신의 한국 내 흥행은 크게 성공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비의 주연이 화제가 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100만은 넘기는 관객수를 기록하게 된다(1,345,025 명). #
첫 주연작의 흥행부진으로 비는 부담을 안게 되었지만 반면에 닌자 어새신을 통해 체지방이 거의 없을 정도의 혹독한 몸 만들기의 과정과 실전을 방불케 하는 무술연습 등이 공개되며 화제가 되었고 MTV Movie Award의 Bad Ass Action Star상을 수상함으로써 어느 정도 실익도 취할 수 있었다.
2008년 5집 《Rainism》 발매와 함께 동명의 타이틀 곡 'Rainism'으로 국내에서 본업인 가수로 컴백하였다. 5집 앨범은 박진영의 프로듀싱에서 벗어나 비가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한 앨범으로 비 가수 커리어에서는 큰 변곡점이었다. 하지만 일단은 JYP일원일 때 추구하였던 노선에서는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고 당시 JYP가 마르고 닳도록 활용했던 월드스타 컨셉도 그대로 계승했다. 사실 비가 2006년부터 월드스타 이미지 마케팅 및 헐리우드 영화 출연에 주력하면서, 레이니즘 발매 전까지 연기 활동만 한 것 같은 인식이 있었다. 'Magic Stick' 같은 가사의 선정성이 논란이 되었지만 기존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1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량을 보이며 상당한 흥행을 거두었다.
그러나 'Tell me' 열풍 후 빅뱅과 원더걸스 등이 메인스트림을 형성하며 빠르게 재편되고 있던 가요계에서 2~3집 전성기 시절만큼의 큰 존재감을 과시하진 못했다. Rainism의 멜론 연간 순위는 55위였는데 3집 It's Raining 시절에 가요계를 지배하던 성적과 국내 최고 솔로로서의 존재감에 비하면 살짝 부족한 음원 성적이었던 것이다. 가수로서 1위 곡은 많은데 확실한 히트곡, 대표곡이라고 할 만한 곡이 없다는 등의 평가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박진영이 비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장점은 부각하되 단점은 최대한 가리는 방법으로 프로듀싱을 해 왔다면, 비가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한 5집에서는 장점은 더욱 강화된 반면에 단점은 잘 커버되지 않아서 불균형이 발생하기 시작했다.활동곡인 Rainism은 비트나 그루브, 'I gotta be a bad boy'가 반복되는 인트로, 브릿지까지의 진행은 호평을 받았고 특히 댄스 퍼포먼스는 당시 영화촬영을 위해 혹독한 트레이닝을 감행했던 터라 피지컬이 극대화된 시점에 만들어진 것으로 물이 올라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곡의 완성도 부분에서는 훅, 멜로디가 곡의 다른 부분에 비해 비교적 약했으므로 댄스와 퍼포먼스를 같이 볼 것이 전제되는 곡이나 다름없었다. 곡이 음원으로서 즐겨 듣기 좋거나 대중들에게 호소력을 가진다기보다는 퍼포먼스와 비디오로 승부한다는 이미지가 더 강해진 것이다. 무대를 감상하면 비라는 캐릭터나 퍼포먼스는 뇌리에 남을지언정 곡에 대해서는 인상이 흐릿하게 되는 것.하지만 안무의 완성도나 컨셉 등에서 나오는 간지는 먹어줬고 워낙에 압도적이었다. 훗날 아는형님에 비가 출연할 때 김희철은 당시 남자 아이돌 멤버 중 댄스를 담당하는 멤버들은 이 곡의 퍼포먼스를 반드시 레퍼런스하였다고 증언하기도 하였다. 이후 곡이 발표된지 10년 이상이 지났음에도 후배 아이돌 가수들이 계속 커버할 정도로 남자 솔로 가수의 대표적인 퍼포먼스를 언급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갈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보였고 특히 방송무대에서의 포스는 대단했다. 비가 이때까지 쌓아놓은 월드스타의 이미지는 건재했으므로 비는 여전히 음악방송이나 시상식에서 슈퍼스타 대우를 받았다. 엠넷의 MKMF나 공중파 방송국 시상식 무대에서 비는 주역급의 무대시간, 클라이맥스를 배정받았고 컴백 시에도 MBC에서 다큐멘터리 특집 방송이 편성되기도 했는데 이런 형태의 컴백 특집 방송은 서태지 급의 스타에게나 편성되는 것이었다. 5집 활동에서 음원 성적은 따라주지 않았으나 스타로서의 비의 존재감은 건재했다고 볼 수 있다.
'Rainism'과 함께 더블 타이틀곡으로 내새운 'Love Story'는 V.O.S의 최현준이 작곡해줬다는 점이 특기할 만한 점으로 감미로운 멜로디의 정석적 R&B 곡이다. 퍼포먼스와 호흡 위주의 댄스곡과 감성적 보컬, 음색을 강조할 수 있는 R&B 곡으로 동시에 활동하는 이전의 활동 패턴을 이어받았다고도 볼 수 있다. 이 곡도 인기가 좋은 편이었는데 KTF 도시락 같은 음원사이트에서 차트 1위 몇번을 기록하는 등 괜찮은 반응을 얻었다. Love Story는 멜론 연간차트 47위 곡으로 55위인 Rainism에 비해 오히려 성과가 더 좋다. 깡 사태 이후 지금에 와서는 Love Story 역시 추억의 명곡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 유튜브에서 차에 타봐나 깡 같은 병맛곡 말고 이런 노래를 다시 불러달라는 댓글이 빗발치고 있는 상황.
그리고 비는 후반기에 복귀하여 후반기에 몰려있는 대부분의 시상식에 시상식 축하공연 전문 가수로 이름을 날린다. 이후에도 비는 매년 시상식마다 Rainism을 빼놓지 않고 불렀는데 사실상 그의 대표곡이자 It's Raining과 함께 비를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2010년 4월에는 '널 붙잡을 노래 (Love Song)'와 'Hip Song'이라는 더블 타이틀로 첫 미니 스페셜 앨범 (Back To The Basic)을 발표하였다. 이 시기에 '천안함 폭침 사건'이 일어났기에 방송 프로그램들이 추모 분위기로 흘러가는 통에 거의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못한다. 그러나 기존 팬들이 가요계의 흐름을 받아들여 음반보다는 음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음원에 치중함으로써 'Rainism' 에 비하여 미미한 음반 판매량에도 불구하고 모든 음원 사이트 주간 1위 및 방송되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모두 1위를 1회 이상 성공하기는 한다.
참고로 앨범의 음반 판매량은 가온차트 기준 26위 / 53,584장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성과였다. 당시 음반시장은 소녀시대나 슈퍼주니어, JYJ 같은 팬덤형 아이돌 가수들의 팬덤 대상 판매가 큰 비중을 차지했고 최다판매량도 20만 장 선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5집이 선주문만 10만장으로서 탑급 가수의 위치였으며 음반차트 5위를 차지했던 2008년에 비하면 최고 솔로 가수의 자리에서 내려온 것만은 분명했다. 기존의 비가 가지는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서 비의 가수로서의 네임밸류가 2010년대에 들어서 하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주식 먹튀 등의 제이튠 관련 각종 논란과 거품설 제기로 흔들릴지언정 월드스타 이미지는 국내 한정으로는 어떻게든 붙잡고 있었다. 또한 방송가에서 비를 스타로 띄워주는 것도 지속되고 있었고 언론에서도 '월드스타' 수식어가 빠짐없이 붙는 등 스타성은 유지되고 있었다.
그나마 비가 음악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가 이 때. "널 붙잡을 노래"는 비의 활동곡 중에서 커다란 임팩트가 있었던 편이다. 곡의 포인트 안무인 꿀렁거리는 복근 웨이브 퍼포먼스가 특징인데 너무 과하고 부담스러워서 호불호가 갈리긴 했으나 시선을 잡아끄는 임팩트는 분명 있었다. 이 복근 웨이브는 간지와 병맛을 넘나드는 특유의 포스 때문인지 꽤 많이 패러디되기도 했다. 이때의 의상 스타일도 좀 과했는데 깡 등에서 볼 수 있는 비 특유의 패션, 스냅백과 민소매 자켓, 부츠로 대표되는 밀리터리 룩 패션이 이 때부터 고착되었다. 눈 밑 메이크업도 그때나 지금이나 재평가가 안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비의 감성이 촌스러워지며 대중과 엇나가기 시작한 시발점이라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Hip Song의 경우 노래 자체는 이전 비의 댄스 타이틀곡처럼 화끈한 인기를 끌지는 못했고 무난한 반응이었다. 가사 면에서는 문제가 있었는데 '난 나만의 인생을 즐기는 슈퍼맨이야'로 대표되는 유치한 가사에서 비의 궤멸적 작사능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흥행 면에서 널 붙잡을 노래는 멜론 연간차트 31위, Hip Song은 96위를 기록했다. 사실상 비의 노래가 대중에게 먹히며 인기를 끌던 마지막 시점이다.
'비(연예인)/논란' 문서에서 볼 수 있는 이 무렵에 불거진 각종 소송들에서 모두 무혐의 처리받으며 법적인 무고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미 악화된 여론이 크게 나아진 기미는 엿보이지 않았다. 이에 활동도 비교적 자제하였다. 주로 콘서트 활동에 매진했으며 음반도 "부산 여자"라는 싱글을 내는데 그쳤다. 그런데 이 곡마저도 표절 의혹에 휩쓸렸으니 안습. 10월 11일 군에 입대함으로써 일부로부터 제기되어왔던 군기피 의혹까지 종결하고 군대에 입대하였다. 제5보병사단의 신병교육대대의 조교로 배치되었으나 이후 연예병사로 차출되었다.
군대 가기 전 공군 협조로 영화 R2B: 리턴 투 베이스를 찍었는데 공개된 줄거리와 스틸은 괴작이 나왔다는 평이다. 감독부터가 두사부일체 2편인 '투사부일체'와 '유감스런 도시' 같은 조폭 코미디를 만들던 김동원 감독이다. 2011년 3월에 촬영을 마쳤지만 극장들이 외면하고 배급사를 찾지 못하여 1년 반 넘게 극장 개봉을 하지 못했다가 2012년 8월 15일에서야 개봉했다. 참고로 원래 제목도 『비상:태양 가까이』로 개봉하려다가 바꾼 제목이다. 결국 예상대로 흥행은 암울해 제작비 절반도 못 뽑았다. 최종 관객수는 1,201,944명이다.
2013년 7월 10일에 전역했다.
그렇게 무난히 군생활 하나 싶었는데 2013년 1월 1일 새해 첫날 김태희와의 열애설이 터졌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발생하였다. 열애설과 연예병사 특혜 논란 문단 참조.
2008년부터 엠블랙이라는 남성 그룹을 프로듀싱하고 있는데 2NE1의 산다라박의 동생과 고은아의 동생이 있는 동생 그룹이란 소리를 듣는다. 의외로 엠블랙이 데뷔 초에 거둔 성적이나 키워낸 팬덤의 규모를 보면 상당히 거대했는데, 데뷔 동기인 비스트는 2011년이 되어서야 화제성과 인지도 면에서 엠블랙을 역전할 수 있었다. 비가 프로듀싱 한 것 치곤 엠블랙의 데뷔 초창기의 임팩트는 꽤 강렬했고, 1위 곡도 자주 뽑았지만 그걸 오래 유지시키지는 못했다. 비의 책임이 아주 없다고는 볼 수 없는 부분.
비가 엠블랙에게 써준 노래는 본인 곡처럼 뭔가 강렬한 포인트는 있고 중독성은 있다. 그런데 너무 질척이는 그루브에 천착해서 멜로디가 약한 면이 있었다. 또는 숨소리나 Oh yeah 같은 반복적인 추임새만 읆조린다거나 하는 문제가 있기도 했다. 여러모로 비 스타일과 판박이인 곡만 준 것이다.
다만 비가 엠블랙에 대한 관여를 줄이고 난 뒤 엠블랙 1집부터 E-TRIBE나 라도, 태완 같은 타 작곡가에게 Cry, Stay, One Better Day 같은 곡을 받기 시작한 후부터는 해결된 문제기는 하다. 그런데 2012년, 이단옆차기가 만들어준 전쟁이야 같은 곡은 여러모로 비 스타일의 감수성이 흐르는 곡이었다. 숨어 듣는 명곡, 즉 자꾸 듣게 되기는 하는데 괴상한 곡 취급을 당하게 된 것이다. 비가 초창기 이후로는 엠블랙 프로듀싱에서 손을 떼기는 했지만 트렌디하고 힙한 이미지였던 비스트에 비해 엠블랙의 컨셉은 세련된 편은 아니었다.
사실 비가 공동 프로듀싱한 6집의 패망을 보면 비의 프로듀서적 자질은 높이 평가해주기 어려운 면이 있다. 5집 RAINISM을 제외하고는 비가 직접 프로듀싱을 맡아서 잘 된 케이스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 비가 프로듀싱을 자처한 이후로 자신의 음악적 커리어도 꾸준히 하향세를 기록 중이다.
상술하였으나 가수에게 가창력보다도 더 중요할 수 있는 것이 본인 노래를 고르는 능력인데, 비는 이 능력이 매우 부족한 편이며, 또한 작사 작곡 능력도 대단치 않다는 평이 많다.
비의 6집 모니터링 영상 이 영상을 보면 비 옆에 있는 작곡가 배진렬이 비의 눈치를 매우 보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으로 봐서 비의 프로듀싱 능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의 6집과 복귀작 깡에서 드러난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가사와 감수성이다. 사운드나 곡 구성의 문제는 깡이나 차에 타봐 수준으로 가지 않는 한에야 대중 입장에서는 바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고 호감도 나타낼 수 있다. 일단 비와 공동으로 곡을 만든 작곡가 배진렬은 레이니즘이나 승리의 스트롱 베이비 같은 세련된 히트곡을 뽑아낼 수 있는 능력이 검증된 사람이다. 그의 손길이 닿은 LA SONG이나 30 SEXY 같은 곡도 훅은 귀에 잘 들린다거나, 사운드는 괜찮은 것 같다는 반응도 심심찮게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가사와 비 특유의 유치한 감성은 비가 제작한 곡에서 대중들이 압도적으로 불호를 나타내는 부분이다. 비는 6집의 전곡을 작사하는 등 작사 욕심을 많이 냈는데 대중들은 곡의 다른 요소들은 계속 듣다보면 참고 들을 수는 있으나 가사만은 못 참겠다는 반응이 많다.
데뷔시절 안녕이란 말대신 활동기에 짓던 '꾸러기 표정'을 아직까지 지어보이는 점, 차에 타봐 같이 유치하고 오그라드는 가사의 내용, 깡에서의 자아도취가 지나쳐 유아적으로까지 보이는 가사 내용, LA SONG처럼 스토리텔링이 전혀 안되는 기승전결이 엉터리인 가사, 같은 말을 중언부언하는 무의미한 말의 반복, 가사 속 이야기 흐름이 이상하게 흘러가다가 갑자기 맥락없이 튀어나오는 '신발끈' 같은 과격한 단어, 억지 라임을 맞추려다가 엉터리로 파괴되는 문법, 쓰여진 그대로의 1차원적인 의미만 가지고 있는 처참한 깊이, 흑인 여성에게 귓속말을 하자 여성의 엉덩이와 가슴이 커지는 천박한 뮤비 장면 등등... 여러모로 비가 연차가 쌓이고 제작권한이 높아질 수록 비 특유의 대중과 괴리된 기이한 감수성의 표현도도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비의 가사는 생각이 너무 짧다. 노래나 시같은 운문의 가사는 쉬운 말로 이뤄지더라도 곱씹어볼 의미가 있고 여러번 들을수록 더 깊게 전달되는 함축적 깊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비는 '레인 이펙트 = 비가 나타난 효과 = 나비효과' 같은 식으로 '나는 비고 내가 나타났으니 효과는 겁나 크겠지? 그럼 나비효과'라는 식의 어린아이 같은 1차원적 의미로 그쳐 버린다. 30 SEXY 같은 곡도 '내가 30살인데 섹시하니까 30 SEXY' 같이 생각의 깊이가 너무나도 짧다. 한 두번 뿐이었다면 이번엔 쉽게 가려나보다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비가 작사한 대부분의 곡들, 특히 차에 타봐나 슈퍼맨 같은 곡에서 화자는 매번 초등학생 같은 유치한 사고수준으로 일관한다. 때문에 대중은 비의 가사를 들으면 경악하거나 놀림감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글은 글쓴이의 정수를 담는 것인데 이런 가사를 썼으니 비 자체의 사람됨이 너무도 얄팍하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비가 가사만 본인이 작사하지 않았더라도 이 정도까지 대중의 불호를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2018년 12월 본인이 또다시 직접 그룹을 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역시나 반응이 영 좋지 않다. 이전에 엠블랙 제작에서 생긴 문제도 문제고 작년에 내놓은 본인 앨범의 퀄리티 때문에 여러모로 좋지 못한 반응들을 얻고있다.
"바람의 파이터" 의 주연으로 택해 데뷔하려 한 바 있으나 스케쥴이 어긋나 출연이 무산되었다. 당시 반응은 "어디 어줍잖은 아이돌 녀석이 감히 최영의 선생님을 연기하려 드느냐" 였고 비의 주연에 반대하는 서명운동까지 있을 정도였다. 결국 스케쥴이 안 맞는다는 이유로 정지훈은 하차, 바람의 파이터는 양동근으로 주연 배우를 바꾸고 다시 제작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바람의 파이터 문서를 참조.
바람의 파이터에서 하차한 후 정지훈은 (상두야 학교 가자)에 주연으로 연기에 데뷔하였다. 드라마 자체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으나 의외로 상당한 연기력을 선보였고 드라마도 워낙 호평이었기 때문에 좋은 커리어를 쌓게 된다. 그 후 결정적으로 비를 범 아시아권 스타로 끌어올린 (풀하우스)에서 대박을 터뜨리는 데 성공, 연기자로서 완전히 입지를 다지게 된다. 가수 출신이 연기자로 데뷔하는 것을 비판하는 언론 기사에서 ''비나 엄정화 정도로 연기를 한다면 몰라도 너무 기준 이하들이 넘어온다"'는 식의 평판을 들을 정도이다.
그런데 풀 하우스 이후는 작품 운이 잘 안 따르고 있다. 국내 작품인 (이 죽일놈의 사랑),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도망자 Plan.B) 등에 출연했는데 평타 정도를 기록한 (도망자 Plan.B)와 (이 죽일놈의 사랑)을 빼곤 대체로 흥행에 실패한 편이다. (도망자 Plan.B)도 시청률 자체는 망한 수준은 아니지만 추노 같은 대세 드라마를 노리고 100억대의 대작 드라마급 투자를 한 데 비해선 파급력이 미약했다. 이들 작품들의 공통점은 모두 전작에서 히트를 친 제작진의 작품이란 것인데 작품 선정에 있어 너무 안정적인 결과를 선호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냐는 평도 있다. 다만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경우 호불호는 갈리지만 박찬욱 식 기괴함과 엉뚱함이 넘치는 영화로, 애초에 천만 관객 노리고 흥행코드 쫒은 영화도 아니기에 흥행 못했다고 까일 정도는 아니다.
영화 부분에서는 헐리우드에도 진출해 (스피드 레이서)와 (닌자 어새신)을 찍었다. (스피드 레이서)는 아시아 프로모션을 위한 단역에 불과했으나 (닌자 어새신)에서는 주연을 맡았다. 영화 자체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나 주연을 맡았다는 사실 자체는 꽤 대단한 일이다. 그 당시의 헐리우드에서 동양계는 흑인보다도 주연 맡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2년에는 군 입대 전 마지막으로 R2B: 리턴 투 베이스라는 전투기 액션 영화를 찍었다. 결과는 혹평 속에서 흥행실패... 입소문이 좋지 않아 관객이 너무 빠르게 빠졌으며 최종관객은 120만대로 나쁘지 않아 보이지만 제작비가 너무 들어간 대작이라 손익분기점에 한참 못미치는 적자였다. CG에 고액을 들여 때깔은 나쁘지 않았으나 스토리의 개연성이 부실했고 초중반부에 지나친 애정씬 묘사와 신파 등으로 영화가 중심을 못잡고 오락가락하다가 시간배분에 실패해 용두사미 엔딩을 맞이했다.
군 제대 후에는 (도망자 Plan.B) 이후 4년만에 SBS 수목드라마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에 출연했다. 방송 이전에 중국에 32억에 선수출되며 중국 드라마 수출 역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는 언플이 나왔는데 중화권에서 아직도 비의 흥행파워가 남아있다는 평가다. 다만 시청률이 망해버렸다... 8.2%로 시작해 시청률이 꾸준히 하락해 5.5%로 마감했다. 드라마 자체도 캐릭터들의 감정선이 오락가락한다거나 오그라든다는 혹평이 많았다.
2015년엔 중국 드라마 (다이아몬드 러버)에 60억을 상회하는 개런티를 받고 출연했다. 중국의 저장위성과 안후이위성에서 동시 방송한 다이아몬드 러버는 2015년 방영당시 시청률과 인터넷 조회수, 이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를 들으며 대성공한다. 인터넷 다시보기 조회수는 종영할 당시 70억뷰를 넘겨서 중국 드라마 역대 6위에 랭크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다이아몬드 러버는 국내 중국 드라마 팬덤에서도 꽤 추천이 많이 되곤 하는 드라마로 비가 오래간만에 괜찮은 작품을 만났다는 평.
2016년에 간만에 지상파 드라마인 (돌아와요 아저씨)를 찍었는데, 상대가 너무 막강해서 아쉬운 작품이 되고 말...은게 아니고 사실 망했다. 최종 시청률이 2.6%까지 폭락했다. 다만 드라마 자체는 나름 매니아층도 형성했고 호평도 받았으나, (태양의 후예)에 쭉 밀려 버렸다. 거기에 송송커플의 연기대상은 덤. (도망자 Plan.B) 이후로 드라마 운이 따르지 않는 듯. 그 뒤에 중국에서 빅토리아와 (팔월미앙)이라는 드라마를 가지기도 했다.
2019년 개봉하는 (자전차왕 엄복동)의 주인공 엄복동 역으로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한다. 그런데 이 영화가 개봉 전부터 실존인물 엄복동의 범죄 이력이 드러나는 등 온갖 잡음에 휩싸이며 전형적인 망한 영화의 냄새를 풍기는 탓에 비가 트렌드에 뒤쳐진다는 비판이 또 다시 나오고 있다.
개봉 전부터 잡음이 심한터라 흥행 실패를 예상하는 시선이 대다수였고 그대로 되었다. 최종 관객 17만에서 상영 종료와 함께 IPTV행이 결정났다. 그와 함께 비가 액스맨의 신작 시리즈인 엑스맨: 다크 피닉스의 오디션 제의를 거절하고 이 영화에 올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후 다크 피닉스도 졸작이란 평가를 받으면서 비는 어떤 영화가 됐더라도 졸작 영화에 출연하게 될 운명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자전차왕 엄복동의 뼈아픈 실패를 감안한다면, 차라리 엑스맨 다크 피닉스에 출연해 해외 영화계에 다시 발을 들이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비가 엄복동 출연으로 얻은 것은 술 한잔 마셨습니다라는 엄복동 드립과 UBD라는 관객 측정지수인데 둘 다 망한 대상을 풍자할 때 쓰이는 드립이다...
그리고 그가 무언가를 운전하는 영화에 출연한다면 걸러야한다는 말이 진담처럼 느껴질 정도로 운전하는 캐릭터주연을 맡을 경우 성공작이 없다.R2B와 엄복동 운전하는 노래도 걸러야 한다 차에 타봐
불행 중 다행으로 비의 첫번째 MBC 드라마 주연작인 웰컴2라이프에서는 좋은 연기력과 동시간대 시청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스타 블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타노 유이, (오하요~!!) (0) | 2020.05.19 |
---|---|
차은우 CHA EUNWOO 인물백과사전 (0) | 2020.05.19 |
송재림 宋再臨 | Song Jae Rim 인물백과사전 (0) | 2020.05.19 |
김제동(金濟東) 인물백과사전 (0) | 2020.05.19 |
오나라 Oh Na-ra 인물백과사전 (0) | 2020.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