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설경구 (薛景求)
본관 순창 설씨
출생 1967년 5월 14일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신체 키 - 175cm 혈액형 - O형
직업 배우
데뷔 1993년 연극 '심바새매'
소속 씨제스엔터테인먼트
학력
서울마포초등학교
마포중학교
마포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제28보병사단)
배우자 송윤아 (2009년 - 현재)
자녀
딸 설승희
아들 설승윤(2010년생)
종교 천주교 (세례명: 마티아)
고향은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출생으로 공무원이던 아버지가 마포구청에 전근을 와 서울특별시 마포구 도화동에서 성장했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세례명은 마티아다.
많은 유명 영화 감독을 배출한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동문인 송해성, 정지우 감독 외에도 박진표, 최동훈 감독 등과 배우 송강호, 최민식, 김윤진, 김석훈, 엄지원, 하지원, 손예진, 이정현 등과 친하다. 또한 문소리와는 <박하사탕>, <오아시스>, <스파이> 세 작품으로 영화에서 세 번이나 커플로 만났고, 실제로도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
연극 배우 출신으로 최민식, 송강호와 함께 2000년대 충무로를 대표한 연기파 트로이카로 엄청난 파워와 에너지를 가진 배우이다.
막연히 연출가가 되고 싶어 집안의 반대를 이겨내고 재수 끝에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몰래 입학 원서를 냈고, 감독을 잘 하려면 연기도 해봐야 한다는 선배들의 권유로 우연찮게 연기를 시작해 이문식, 유오성, 전수경 등 동문들이 주축이던 극단 한양레퍼토리에 동참하면서 1993년작 연극 《심바새메》로 데뷔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해서까지 같은 사람들, 교수님과 함께 하다보니 대학 5학년 같은 느낌이 싫어 극단을 나왔다. 참고로 대학 시절에 KBS 공채 탤런트에 응시해 3차까지 합격했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열린 젊은 연극제 공연작의 연출을 맡아 달라는 교수들의 성화에 시험을 포기했다. 극단을 나온 후 떠돌이 생활을 하던 도중 극단 학전에 있던 대학 선배에 부탁해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다가 하도 열심히 붙인 나머지, 김민기의 눈에 띄게 되면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 캐스팅 되었다.
설경구는 1994년 초연 때부터 1996년까지 80여 가지 역할 가운데 두 역을 제외한 모든 역할을 해보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01년에는 공연 1,000회를 기념한 독일 베를린 무대에 섰다.
영화에 입문한 초기에는 《꽃잎》, 《러브 스토리》, 《처녀들의 저녁식사》, 《유령》 등의 영화에 단역으로 모습을 비추었지만 본격적으로 주연급의 자리에 오른 것은 2000년작인 《박하사탕》이다. 물론 첫 상업 영화 주연작은 아니다. 《박하사탕》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박종원 감독의 《송어》라는 작품이 첫 주연작이나 상업 영화 치고 저예산 작품에 설경구가 원톱 주연이 아닌 데다가 촬영 기간도 로케이션이 90%이상 한 동네라 <박하사탕>에 비해 길지 않은 편이었고 예술 영화에 가까운 상업 영화였다. 이미 한 차례 <박하사탕> 오디션에서 탈락 되었지만 이창동 감독 부인이 우연히 거실에서 본 오디션 필름에서 설경구를 보고 "김영호 여기 있네"라며 설경구를 추천한 것이 인연으로 캐스팅 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설경구는 《해피엔드》에서 주진모가 연기한 전도연의 내연남으로 캐스팅 된 상태였다.《박하사탕》에서 40대에서부터 20대로 거슬러 올라가 점점 순수함을 잃고 타락해가는 남자 김영호 역으로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 설경구는 "1999년 한국 영화가 발견한 최고의 수확"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며 그해 10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극중 등장하는 대사 나 다시 돌아갈래!는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명대사다.
2002년 《공공의 적》에서 꼴통 경찰 강철중 역으로 열연하며 본격적인 스타가 된다. 실감나는 연기와 대사는 보는 이의 가슴을 뻥 뚫어주었다. 《오아시스》에서는 지적 능력이 덜 발달한 전과 3범의 홍종두역을 맡아서 색다른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으며, 《광복절 특사》로 개그 장르에도 도전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2002년은 설경구의 해라고 불리울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며 다시 한 번 무려 10개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오죽하면 수상 소감을 말하는 시상식에서 죄송하다고 할 정도로 3년여 동안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쓸었다.
강인찬 역을 맡은 2003년작 《실미도》는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비로소 설경구를 본격적인 "흥행 배우"로 자리잡게끔 만들어줬다. "비겁한 변명입니다!"는 실미도 최고의 명대사/명장면으로 회자되고 있다. 한일합작 《역도산》을 촬영할 당시 체중을 30kg 정도 늘리고, 레슬링 기술을 수련 했으며, 바로 다음 영화를 위해서 감량하는 등 연기를 위해 몸을 혹사시키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며, 극중 전체 대사의 98%를 차지하는 일본어 대사 탓에 더빙을 제안받기도 했지만 "자기 목소리로 연기하지 않는 배우는 연기자가 아니다"라는 일념으로 스스로 5개월간 독학을 하며 완벽히 대사를 소화해 낸 완벽주의자로 통한다.
다만 《실미도》로 정점을 찍은 후론 점점 흥행에 고배를 마시게 되고 관객들은 점점 그의 작품 선택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과거 마치 흥행 보증 수표라 불렸지만 조용히 내려앉은 한석규를 떠올리게도 했기에 많은 팬들이 불안해했다.
그러나 2009년에 개봉하여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해운대》에서, 술에 취해 사직구장의 펜스에 매달려 이대호에게 눈을 부라리며 꼴리건 흉내를 내는 등 명연기를 해내며 다시금 흥행 배우로 등극한다. 2010년 <해결사>, 2012년 《타워》, 2013년 《감시자들》과 《소원》, 《스파이》가 연달아 흥행에 성공하며 흥행 배우 자리를 공고히 했다.
하지만 《나의 독재자》,《서부전선》,《루시드 드림》,《불한당》4편 연속으로 흥행에 실패하며 흥행 면에서 다시 불안한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흥행 성공/실패와 별개로 연기력 자체가 떨어졌다거나 하는 평가를 많이 받는 작품이 있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이후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불한당원 신드롬을 만드는등불한당에 푹 빠진 우리는 불한당원 팬덤몰이에는 성공한 《불한당》으로 생긴 팬덤에 힘을 입어 《살인자의 기억법》이 개봉 후 2주 가까이 박스오피스 1위를 이어가고 손익분기점(220만 관객)에 무난히 넘기면서 흥행에 있어서는 한숨 돌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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